우리는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이켜 우리 자신의 삶에 있는 죄를 깨닫게 해달라고 그분께 구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아버지와의 관계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가계에 있는 죄와 황폐함의 패턴을 끊을 수 있습니다. 오직 누군가가 자신의 가계에서 일어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을 멈출 때에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시고 그들과 그들의 세대를 위해 미래로 가는 새로운 길을 제공하실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원한이나 분노를 품었던 이유에 대해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우리를 해결책으로 이끌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우리 부모와 조부모에게서 보아온 것과 똑같은 죄의 순환을 영속시킬 뿐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 51:4).
헨리 라이트 - 질병의 영적 뿌리를 뽑아라
시편 107편에서 시인은 인생을 “광야 사막 길”에 비유합니다. 인간은 광야 사막의 길을 걷는 여행자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여정은 외롭고 쓸쓸하며 주리고 목마릅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 모두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한 결과, 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으로 마주해야 하는 삶은 광야 사막 길을 걷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광야 사막의 길에서 진정한 인생의 길로 헤어나올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길로 돌아오는 방법은 오직 기도, 즉 유일하게 도우실 수 있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신호섭 - 인간의 난제와 하나님의 구원
예수님께서 신자에게 여전히 회개하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고행하라고 떠미는 것도 아니고 괴롭히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소리이며 부드러운 음성입니다. 우리 구주께서 신자에게 “이미 내가 십자가와 부활로 네 죄를 다 사면하고 너를 의롭다고 선포할 근거를 마련해 놓았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죄에 빠져 살지 말고 내게로 와서 다시 하나님과의 은혜로운 교제를 회복하려무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벌이 두려워서 하는 회개는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이러한 회개로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복음적 회개는 하나님을 다시 사랑하고 화해하며 즐거워하기 위한 회개입니다. 반면에 율법적 회개는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하기 위한 고행일 뿐입니다. 복음적 회개의 끝에 용서와 화목이 있다면, 율법적 회개의 끝에는 교만과 불만족과 거절감만 있습니다. 개인의 죄는 개인에게서 끝나지 않고 가정이나 교회 등 공동체 전체에 해를 끼치므로, 참된 회개는 공동체의 회복을 구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형벌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교제하는 기쁨으로의 초대입니다.
이정규 - 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