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중 끌려간 160명, 그리고 침묵한 국가, 나이지리아 교회 납치의 전말

샘 존스 목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샘 존스 목사의 기고글인 '교회 안에서 납치된 기독교인 160명, 나이지리아 정부는 책임에서 자유로운가'(Can we blame the Nigerian gov't now? 160 Christians kidnapped while in churches)을 최근 게재했다.

샘 존스 목사는 아이오와주 험볼트에 위치한 어번던트 라이프 크리스천 펠로우십(Abundant Life Christian Fellowship)에서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저자로도 활동 중이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2026년 1월 18일 일요일 아침, 나이지리아 카두나주에서 무장 테러리스트들이 세 곳의 교회를 급습해 예배 도중이던 기독교인 최소 160명을 납치했다. 이들은 예배가 진행 중인 교회 안에서 신자들을 끌어내 인근 숲으로 행군시키고, 이미 테러리스트 거점으로 알려진 지역을 향해 강제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누구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니어야 했다.

불과 일주일 전, ‘트루스나이지리아(TruthNigeria)’는 쿠르민 왈리(Kurmin Wali) 회랑 지역이 임박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테러 경보를 발령했다. 이 지역은 풀라니 민족 민병대(Fulani Ethnic Militia)와 연계 테러 조직들이 수년간 운영해 온 상설 인질 수용소들과 불과 몇 마일 떨어져 있으며, 생존자 증언과 영상 인터뷰, 위치 정보 분석을 통해 수백 명의 인질이 장기간 억류돼 왔다는 사실이 이미 문서로 확인된 곳이다.

위협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지형은 파악돼 있었다. 공격 패턴도 명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장한 풀라니 민족 민병대가 세 곳의 교회에 침입해 카두나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교회 집단 납치를 감행했을 때, 정부의 대응은 긴급하지 않았다. 정부는 부인으로 일관했다.

사건 발생 후 이틀 동안, 지방 당국은 집단 납치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부정했다. 가족들이 실종된 신자들을 찾아 헤매는 동안, 당국은 관련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다 트루스나이지리아가 공격에 대한 상세한 증거 자료를 공개한 이후에야 정부는 입장을 바꿔 납치 사실을 인정했다.

이 과정은 중요하다. 이번 사건은 예측 불가능한 비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설 인질 수용소 인근, 테러 위험이 문서로 경고된 회랑 지역에서 발생한 공격이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졌을 때 국가의 첫 반응은 보호가 아니라 억압이었다.

이는 단순한 실패가 아니다. 반복되는 패턴이다. 나이지리아는 현재 전 세계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 가장 위험한 나라가 됐다. 10년 넘게 풀라니 민족 민병대와 연계된 지하디스트 조직들의 폭력은 일정한 궤적을 따라 반복돼 왔다. 정보 경고는 무시되고, 공격은 부인되며, 표현은 완화되고,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으며, 결국 조용한 정상화로 이어진다.

교회는 불타고, 마을은 학살당하며, 예배 중인 신자들이 납치된다. 그리고 매번 같은 대응이 반복된다. 축소, 재구성, 지연.

쿠르민 왈리 지역의 목격자들은 총을 든 무장괴한들이 예배 중 교회로 들이닥쳐 신자들에게 엎드리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고 증언했다. 일부는 검은 로브와 터번을 착용했고, 일부는 나이지리아 군복과 유사한 위장복을 입고 있었다. 공격자들은 세 곳의 교회를 동시에 공격한 뒤, 보안 당국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숲 지역으로 인질들을 이동시켰다.

이는 우발적 범죄가 아니었다. 기회주의적 도적 행위도 아니었다. 이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영토에서 벌어진, 무장 풀라니 민족 민병대의 조직적 작전이었다.

이 지점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제기된다. 사전에 경고가 있었고, 상설 인질 수용소 인근에서 벌어진 이 정도 규모의 공격이 어떻게 치명적인 무능이나, 혹은 조용한 묵인 없이는 가능했는가?

드론과 위성 감시가 일상화된 시대에, 인질 수용소가 수년째 방치되고, 몸값 경제가 공개적으로 작동하며, 납치범들이 보안 회랑 인근에서 활동하고, 피해자들이 사실상 무방비 상태의 영토를 가로질러 이동되는 상황은 이 질문을 더욱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 어느 순간부터 실패는 우연이 아니라 선택이 된다. 정부는 무엇을 막았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허용했는가, 그리고 무엇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는가로 평가받는다.

이 거부는 국제 사회의 언어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서구 기관들은 나이지리아의 폭력을 ‘복합적’, ‘민족적’, ‘부족 간 갈등’으로 설명하지만, 복합성이라는 말로 교회가 표적이 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민족이라는 말로 예배 중인 신자들이 습격당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부족 갈등이라는 말로 무장 민병대가 여러 교회를 동시에 공격하는 조직적 작전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이를 설명하는 단어는 박해다. 그리고 이는 국가가 부인하고, 지연시키며, 맞서기를 거부함으로써 용인되거나 방조된 박해다. 그날 교회에서 끌려간 남성과 여성들은 혼란의 희생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정부가 경고를 받았음에도 보호하지 않은 영토에서 발생한 테러의 피해자였다.

세계는 이것을 ‘복잡하다’고 부를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불러야 한다. 그리고 이제 나이지리아 정부는 오랫동안 회피해 온 질문에 답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경고가 무시돼야 하는가, 얼마나 많은 교회가 불타야 하는가,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이 납치돼야 이것이 더 이상 과실이 아니라 공모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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