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커크가 전 세계 기독 청년들에게 남긴 불굴의 신앙 유산

조셉 드수자 대주교. ©premierchristianity.com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조셉 드수자 대주교의 기고글인 ‘나이로비에서 서울까지: 찰리 커크, 기독 청년들에게 담대함을 불어넣다’(From Nairobi to Seoul: Charlie Kirk emboldened Christian youth)를 24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조셉 드수자 대주교는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인권 및 시민권 운동가이다. 그는 남아시아의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옹호하며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는 단체인 ‘디그니티 프리덤 네트워크(Dignity Freedom Network)’의 설립자이다. 또한 인도 성공회 굿 셰퍼드 교회의 대주교로 섬기고 있으며, 전인도기독교협의회(All India Christian Council)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찰리 커크의 삶이 미국 내 정치적 영향력에 집중되는 가운데, 한 가지 중요한 차원이 간과될 위험이 있다. 바로 전 세계 기독 청년들에게 끼친 그의 깊은 영향력이다. 지난 주일 열린 추모식 현장만 훑어보아도 이 사실은 분명히 드러난다.

커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앙 고백, 복음의 변혁적 능력, 그리고 유대-기독교적 민주주의의 문명적 토대에 대해 당당히 증언했다. 이는 영적 모호함의 시대에 담대하고 젊은 리더십을 갈망하던 젊은 신자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커크를 기리는 촛불 집회는 대륙을 넘어 이어졌다. 베를린 주재 미국 대사관 앞에서는 유럽 청년들이 그의 가족을 위해 기도했고,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수천 명의 한국 보수 기독교인들이 세속적 흐름에 맞서는 예언자적 목소리로 커크를 기억했다.

나이로비 올세인츠 대성당과 상파울루 복음주의 교회들에서도 비슷한 추모 모임이 열렸다. 이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었다. 커크가 기독교적 가치를 강력히 수호한 역할에 대한 확인이었다. 나이로비에서는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기도회를 열고, 논란 속에서도 신앙에 헌신한 커크의 모습을 칭송했다. 그들은 청년들이 세속적 압력에 맞서도록 영감을 준 그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그의 단호한 발언을 ‘혐오 발언’으로 왜곡하는 것은 은혜를 무시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세대의 기독 청년들은 종종 잃어버린 듯 방황하고, 공적 인물들이 기독교적 정체성을 당당히 옹호하지 못하는 현실에 실망해왔다. 그런 이들에게 커크는 우렁찬 나팔소리 같은 존재였다.

탈기독교 서구 사회에서 신앙의 상징은 점점 공적 공간에서 밀려나고 있다. 반면 다른 종교의 상징은 아무 제재 없이 번성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비기독교적 관습에 대한 비판은 봉쇄하면서, 예수와 성경적 도덕에 헌신한 이들에 대한 공개적인 조롱은 허용한다.

법치, 인간 존엄, 과학 혁신, 노예제 폐지 등 현대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유대-기독교 윤리의 사회적 선물은 좀처럼 조명되지 않는다. 수백만 명이 서구의 자유—표현, 종교, 평등, 여성 권리를 위해 수십 년을 기다려 이주하지만, 도착 후에는 오히려 샤리아 법이나 신성모독법과 같은 상충하는 규범을 주장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에 대한 커크의 응답은 서구의 탁월성을 ‘배타주의’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토대에 대한 청지기적 사명’으로 수호하는 강력한, 신앙에 뿌리 둔 변호였다.

지난 주일 하이데라바드 대성당에서 필자는 커크와 디트리히 본회퍼를 나란히 놓고, 그의 죽음을 제자도의 궁극적 대가인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는 것”(요한복음 15:13)으로 묘사했다. 그의 정치적 입장을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예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증언과 기독교 가정생활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안정된 사회의 기초다.

커크는 가장 강한 반대자들과도 문명적 토론을 이어갔으며, 에베소서 4장 15절의 말씀처럼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 본을 보였다. ‘각성(woke) 문화’에 맞선 정면 돌파는 오랫동안 필요했으며, 커크는 이를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이끌어갔다.

“마음을 그리스도께 드리십시오. 그것이 유일하게 지속되는 혁명입니다.” 커크는 2023년 TPUSA Faith 연설에서 이렇게 촉구했다. 많은 이들에게 커크는 예수님을 ‘현실의 주님’으로 소개해, 그분이 단지 고대 역사가 아니라 지금 내 삶과 관련된 분임을 보게 했다.

상대주의 시대 속에서 커크는 도덕적 분별을 보여주었다. 그는 성별 전환 깃발 아래에서 자행되는 아동 신체 훼손을 ‘도덕적 광기’로 규정했고, 영국 로더럼에서 1,400명 이상의 피해자를 낳은 성범죄 사건에 대한 침묵을 정죄했다. 이러한 복음적이고 이성적인 약자 보호는 미국, 영국,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선지자적 목소리를 회복하라는 도전을 던졌다.

커크는 은혜와 담대함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고, 사실과 전문성으로 반대자를 무너뜨렸으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옥스퍼드 유니언에서 좌파 활동가들과의 유명한 논쟁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의 궁극적 천재성은 ‘살아낸 혁명’에 있었다. 그리스도로 변화된 삶이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의 죽음은 이 메시지를 더욱 증폭시키며, 청년들에게 값비싼 제자도를 향한 부르심을 던진다. 본회퍼의 말처럼,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 그는 와서 죽으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새롭게 담대해진 기독 청년들이 이어가야 할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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