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작가들의 말말말>

도서 「나는 왜 믿는가」

당신은 어떻습니까? 신의 존재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입니까? 여러분 중에는 탐색 단계에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긴가민가하지만 혹시나 싶어서 좀 더 알아보려는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혹은 확신은 없지만 신의 존재를 선택하여 믿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제게 한 말씀을 기억합니다. “제가 보기에 신이 존재할 가능성과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반반이었는데, 결국 존재할 가능성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가 나중에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얼마나 큰 낭패를 보겠습니까? 반면에 존재한다는 쪽을 선택했다가 나중에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크게 낭패 볼 일은 없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저는 ‘보험성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혹시나 신이 존재할지도 모를 상황을 대비해 보험을 들어 놓는 식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시간도 노력도 돈도 최소한만 투자합니다. 나중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크게 손해 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적당한 선에서 간만 보고 있으면 그 맛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김영봉 – 나는 왜 믿는가

도서 「개혁주의 종말론」

종말론을 영어로는 에스카톨라지(eschatology)라고 하는데, 이는 라틴어 에스카톨로기아(eschatologia)에서 왔고, 헬라어 역시 에스카톨로기아(ἐσχατολογία)라고 부른다. 헬라어 에스카톨로기아는 마지막을 의미하는 에스카토스(ἔσχατος)와 어떤 것에 대한 연구(the study of something)를 의미하는 로기아(λογία)라는 단어가 합성된 단어이다. 이 단어가 신조어로 처음 사용된 것은 루터파 정통주의 신학자 J. 게르하르트(J. Gerhard)의 제자 필립 하인리히 프리드립(Philipp Heinrich Friedlicb)에 의해서이고, 학술 언어로 정착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이다.

이상웅 – 개혁주의 종말론

도서 「윌리엄 윌리몬의 설교자와 설교」

설교자는 대담하다. 마치 철학의 역사가 가장 만족스럽고 명확한 결과로 끝나기나 한 것처럼 대담하다. 그들은 대담하게 온 세상, 약분 불가능한 자연, 지나간 역사의 스핑크스와 미래의 역사의 신비, 개인의 수수께끼, 운명, 죄책감, 죽음을 가져다가 대담하게 이 모든 것을 괄호 안에 넣은 뒤 영원과 확신, 승리, 용서, 의, 주, 생명과 같은 단어를 동원하여 모든 것을 외부로부터 다룬다 어떠한 설교의 어리석음이나 기량 부족, 왜곡도 사실을 바꿀 수 없다. 그들은 그냥 다른 사람들로부터 듣고 배운 것을 반복하고, 용기 있게 그렇게 한다. 그들은 대담하게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대부분 호격 양식이기 때문에 설교는 연설 이상이어야 한다. 설교는 소환이다. 월터 브루그만은 소명이 설교의 결정적 요소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결단에서 인간의 행위로 넘어오는 과업의 이양은 설교자에게 결정적인 순간이다. 설교자는 결국 하나님에 관한 담론에서 소환과 책임, 소명, 위험에 관한 인간의 담론으로 전환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집결하라는 부름을 듣고 “예” 라고 대답한 사람들에 의해 구체화되고, 실행되고, 구현되기를 모색한다.

윌리엄 윌리몬 - 윌리엄 윌리몬의 설교자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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