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법과 가이사의 법(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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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헌제(한국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시 139:13, 렘 1:5, 출 21:22)

서헌제 박사(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시편 기자는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다”고 노래하며 인간 생명의 창조를 신비로 고백한다(시 139:13).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다”고 말씀하신다(렘 1:5). 또한 모세의 율법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했을 경우, 단순한 사고라 할지라도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어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출 21:22).

이러한 성경의 말씀은 태아가 단순한 세포조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계획하시고 지으신 생명임을 보여준다. 생명은 수태의 순간부터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지닌 존재이며, 인간은 그 생명을 자의적으로 끊을 권한이 없다. 이러한 인식은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대부분의 복음주의 기독교 전통에서도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며, 낙태를 도덕적 죄, 혹은 살인의 한 형태로 간주하게 한다.

가이사의 법에서도 낙태가 죄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계속된다. 그 핵심에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중 어느 가치를 더 중시할 것인가라는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2012년,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형성 중의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태아가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에게 의존해야 하더라도, 그 자체로 모와 별개의 생명체이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이며, 국가는 헌법 제10조 제2문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2019년 헌법재판소는 입장을 바꾸어, 형법상 자기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에서 헌재는 “헌법 제10조가 정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서 파생되는 자기결정권은, 결정 가능 기간 내(임신 22주 내외)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포함한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는 현재의 낙태죄 조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 결과 낙태죄는 2020년 말로 그 효력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이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법무부와 국회는 대체입법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실질적으로 ‘낙태 천국’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낙태 문제는 미국에서도 대선의 향방을 좌우할 만큼 큰 사회적 이슈이다. 미국은 지난 50년 가까이 Roe v. Wade 판결을 통해 낙태를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자유(right to privacy)로 인정해 왔다. 이 판결은 낙태 허용 여부를 임신 기간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하여, 초기에는 허용하고 후기에는 제한하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2022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Dobbs 판결은 이 모든 법리를 뒤집었다. 다수의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Roe 판결을 “역사적 전통이나 헌법 문맥에 뿌리내리지 못한 잘못된 판결”이라며 폐기를 선언하였다. 연방 차원이 아닌 각 주의 입법 기관이 낙태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어떤 주에서는 낙태가 전면 금지되고, 다른 주에서는 전면 허용되는 양극화된 윤리 지형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낙태를 둘러싼 논쟁은 보수와 진보, 정권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하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신앙인에게는 여전히 근본적인 질문이 하나 있다. 우리는 생명의 편에 서 있는가? 단순히 ‘낙태 반대’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회는 고통 속에 있는 여성과 가정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이제까지 사실상 전면적으로 낙태가 행해지는 현실에 눈감고, ‘낙태는 죄’라는 성경의 진리를 담대히 가르치지 못했던 점을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는 무분별한 낙태를 줄이기 위해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아이를 낳고 양육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교회 역시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하나님은 한 생명도 우연히 탄생했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눈에 각 사람은 귀하고 소중하다. 우리 역시 그 시선을 닮아, 생명을 지키는 일에 진지하게 응답해야 한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다”는 주님의 음성이 오늘 이 땅 위에 울려 퍼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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