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한 순서: 로버트 토마스, 호레이스 알렌, 호레이스 언더우드

서울장신 류금주 교수
서울장신 류금주 교수

한국교회사의 출발은 멀게는 1784년 이승훈의 수세로부터 시작된다. 한국 천주교회의 선교 시점이다. 그런데 흔히 한국교회사라고 할 때 그것은 개신교회의 역사를 가리킨다. 한국교회사, 즉 한국 개신교회 역사의 출발은 1884년 9월 의료선교사 알렌이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부터 기산한다. 한국교회가 한국 선교 100주년을 1984년에 기념한 까닭도 바로 선교의사 알렌의 입국을 한국선교의 출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앞서 한국선교 희년을 1934년에 기념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두 인물이 동시에 떠오른다. 한 명은 한국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 로버트 토마스 목사이고 다른 한 명은 한국 최초의 목사선교사 언더우드이다. 토마스는 1866년 병인교난의 언저리에서 한국을 찾았다가 순교했다. 언더우드는 알렌의 입국 이듬해인 1885년 4월 한국에 들어왔다. 토마스의 경우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라는 강렬한 역사적 위치가 있다. 언더우드의 경우 최초로 상주한 목사선교사로서 근대 한국과 한국 교회의 기틀을 다진 한국교회사 주추의 위치를 그에게서 앗을 자가 없다.

그래서 최초의 내한선교사로서 의사 알렌을 기념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늘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 토마스와 최초의 개신교 상주 목사선교사 언더우드를 상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 분 선교사의 족적이 한국교회사에 그렇게 크고 뚜렷하다.

2. 토마스와 언더우드의 차이: 상주한 선교사인가

토마스와 언더우드의 공통점은 둘 다 목사선교사라는 점이다. 그러면 우리는 언더우드보다 더 먼저 한국을 찾은 목사 토마스를 한국 최초의 개신교 목사선교사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사가 광의의 의미에서 가톨릭교회의 한국 선교부터 시작한다고 했을 때, 그 이전에도 한국이 기독교와 만난 몇 가지 경우가 제시 된다. 한국교회사 연구의 대석학 민경배 박사(필자를 포함한 한국교회사학자들의 직접ㆍ간접적인 스승이라고 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다)는 그의 주저이자 명저인 한국기독교회사에서 한국교회사를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하고 있다. 제1편 근대 이전의 기독교와의 접촉, 제2편 한국의 로마 가톨릭 교회, 제3편 한국의 프로테스탄트교회. 민경배 교수의 이러한 구분은 다시 둘로 묶을 수 있다. 접촉과 역사이다. 즉 접촉은 역사로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일 터이다.

토마스와 언더우드는 예컨대 이러한 접촉과 역사의 구분을 적용시킬 수 있다. 둘의 차이는 상주 여부에 있다. 토마스는 웨일즈 출신으로 본래 중국에 파송된 런던선교회 소속 선교사였다. 1863년 12월 중국 상해에 도착한 그는 우여곡절 끝에 1865년 가을 성경을 들고 한국을 찾게 된다. 우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황해도 자라리에서 두 달 반을 지내며 한국어도 배우고 성경도 나눠준다. 북경으로 다시 돌아간 그해 겨울, 북경에 온 한국인 동지사 일행 중 한 사람인 평양 출신 상인 박씨에게서 자신이 뿌리고 온 성경이 평양까지 흘러들어갔다는 사실을 듣고 가슴이 활활 타오르던 차였다. 그리고 기회를 만나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다시 한국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병인교난의 불길이 충천할 때에 평양의 대동강에서 달려드는 조선 병사에게 성서를 내어 주면서 세상을” 떠났다. 한국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가 된 것이다.

3. 알렌과 언더우드의 차이: 목사 선교사인가

알렌이 한국 개신교회의 첫 상주 선교사가 분명한 데도 우리는 자주 언더우드를 떠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둘 다 상주했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역사적 연속성을 가지기에 충분할 만큼 오랜 시간 한국인들과 함께 했다. 둘이 함께 세운 광혜원은 일차적으로는 알렌이 갑신정변 때 민비의 조카 민영익을 살려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선교 자유가 아직 없는 한국에서 광혜원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관문이 되고 있었다. 이는 의료선교사 알렌의 빛나는 공헌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알렌은 1905년 을사늑약의 일본의 미움을 받아 미국으로 쫓겨 가고 만다. 그의 신분은 미국외교관이었다. 사실 알렌은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왔는데 3년의 의료선교사 활동 이후 18년을 미국외교관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광혜원 설립과 그 초기 활동 이후 그의 사명 터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한국 교회의 설립 그리고 그와 동의어로 역사에서 울리고 있는 근대 한국의 설립은 오롯이 최초의 상주 목사선교사 언더우드의 공헌으로 돌아간다. 의사선교사와 목사선교사의 관심 분야와 지향점은 전혀 다르다. 한국 교회 창설과 근대 한국 수립의 비전은 목사선교사 언더우드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었다.

류금주 교수(서울장신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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