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섭 교수   ©예장합동총회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기독교통일학회(회장 오일환 박사)가 '대북정책, 국가와 교회의 파트너십'을 주제로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사랑의교회에서 광복 70주년·분단 70년 특별 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기독일보는 발표된 내용들이 오늘날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 학술심포지엄 발제문 중 하나를 정리해 소개한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교회와 국가의 파트너십에 관한 신학적 연구: 19세기 네덜란드의 신학과 역사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한 기독교통일학회 부회장인 총신대학교 안인섭 교수는 '전통적으로 칼빈주의가 정치와 사회를 이끄는 동력이 되어온 네덜란드의 신학과 역사를 소개했다. 그 가운데서도 '탁월한 신학자이며 목회자로 동시에 언론가요 수상까지 역임했던 정치가'였던 아브라함 카위퍼(Abraham Kuyper, 1837~1920)의 사상도 소개했다.

■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 독립 후 360여년간 칼빈주의가 정치와 사외 이끄는 동력

먼저 안인섭 교수는 '네덜란드'를 소개하며 "축구 감독 히딩크의 나라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는 독일, 프랑스, 그리고 영국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나라로서 대륙에서 해양으로 진출하고 해양에서 대륙으로 진입하는 길목이기 때문에 마치 한반도가 주변 국가와의 관계에서 그렇듯이 유럽 각국의 이해가 충돌하는 중심지였다"며 "네덜란드는 이런 지정학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한국과 유사한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네덜란드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연구한다면, 한국의 기독교인들의 바람직한 교회와 국가의 관계 이해에 유익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어 "네덜란드는 16세기까지 신성로마제국과 그 후원을 입고 있었던 로마 가톨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네덜란드 칼빈주의자들은 1565년 헤이제(Geuze) 동맹을 결성한 이후 1568년에서 1648년까지 무려 80년에 걸친 용맹한 반-가톨릭, 반-스페인 독립전쟁을 전개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칼빈주의 국가로 독립했다. 당시에는 철저한 칼빈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투철한 독립운동가가 되는 것이었다"며 "이런 역사적 전통 위에서 독립 후 360여년간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칼빈주의가 정치와 사회를 이끄는 동력이 되어왔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지금까지도 네덜란드는 기독교적인 사상 위에 서 있는 정당들, 즉 기독교민주당(CDA)나 기독연합당(CU)등이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 정당들이 정치를 이끌어 가고 있다"고 안 교수는 전했다.

■ 네덜란드의 기독민주당, 양극단주의 사이에서 균형 잡으며 중심추 역할

안인섭 교수는 현재 네덜란드의 기독교 정당 활동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네덜란드는 입헌군주제에 입각한 대의 민주주의체제로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며 "1945년 이후 네덜란드의 주요 정당으로는 사회 민주주의적인 정당인 노동당(PvdA)과 중도 성향의 기독민주당(CDA), 그리고 우파 성향의 자유당(VVD)이 있다. 이 가운데서 네덜란드의 제1당을 수차례 차지하면서 연립정권의 중심에 존재해 왔던 것은 기독민주당(CDA)이었다"며 "이 기독민주당은 반혁명당과 가톨릭국민당, 그리고 기독교역사연합당이 1977년 연합하여 구성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아 교수는 이어 "기독민주당은 이념적 성향에 있어서는 중도우파 혹은 중도좌파로 분리된다. 이는 기독민주당이 종합적으로 볼 때 서민 대중에 대한 가치를 중시하면서 그들에게 관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불어 합의주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네덜란드 정치에 있어서 기독민주당은 양극단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중심 추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며 "기독민주당은 분화된 네덜란드 사회 구조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대변하고 있으며 카위퍼 이래로 지속적으로 네덜란드 정치의 중심에 서 있었다"고 소개했다.

덧붙여 그는 "2006년에는 보다 칼빈주의적 색채를 분명하게 나타내는 기독교연합당(CU)이 6석을 얻으며, 연립정권에 동참한 바도 있었다"고 전했다.

안 교수는 "기독민주당(CDA)의 지지자들 중에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기독교정당이 단순히 종교적 헤게모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일반의 보편적 가치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며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네덜란드 칼빈주의자들의 정치 참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적 상황에서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란 먼저 21세기 분단된 한국이라는 역사적 정황을 깊이 숙고한 후에 칼빈과 카이퍼의 정치 참여의 사상을 다시 창의적으로 적용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며 "그러므로 한국은 현재 네덜란드와 같은 기독교 정당이라는 형식보다는 외적으로 종교성을 표방하지 않는 일반 정당이 네덜란드의 기독교적인 정당이 지향하려고 했던 그 '가치와 규범'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고 제안했다.

■ 칼빈주의 신학사상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네덜란드의 '관용과 타협' 정신

안인섭 교수는 이날 '사회적 대화를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1990년대 네덜란드의 기적'이라 불리는 성공을 이룬 네덜란드의 역사도 소개했다.

안 교수는 "네덜란드는 지난 1970년대에 국제적인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적이 있었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물가는 상승했으며, 노동 시장이 불안해졌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문제들은 더욱 심각해져서 마이너스 성장이 이어졌고 실업률이 급증하며 국가경제 위기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른 시기 정비해놓은 사회복지제도로 인한 재정적자의 증가와 높은 조세부담과 노동비용, 그리고 심각한 노사갈등 등 이른바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 그 원인으로 제기되었다"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네덜란드 정부와 노사는 1982년 말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ccord)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내고 1990년대 네덜란드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성공을 이루게 되었다. '폴더 모델'(Polder model)이라고도 불리는 네덜란드 모델의 특징은 사회적 협의기구와 노사 합의기구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노사관계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네덜란드 모델'이 제시된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제안은 재계와 보수 언론, 노동계와 진보 진영 양쪽의 반대를 받기도 했다"며 "2008년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로 한국 경제에도 위기가 닥치자 다시금 네덜란드 모델이 이상적인 대안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네덜란드 모델을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 네덜란드와 같은 사회적 신뢰와 타협의 기반이 형성되어 있느냐는 것이다"며 "사회적 협의에 대해 우리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네덜란드의 경우에도 바세나르 협약 이후 2004년의 가을 협약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진통이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단순히 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넘어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과 이에 대한 사회문화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고 제안했다.

안 교수는 "네덜란드에서 이러한 사회적 협약이 가능했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며 "네덜란드의 관용과 타협의 정신은 역사적으로 칼빈주의 신학 사상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네덜란드가 독립하여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부터 17~18세기의 정치.경제적 황금기와 19세기 사회분화현상의 정착시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칼빈주의적 개혁주의자들의 영향력은 막대한 것이었고 네덜란드 역사는 이것을 빼놓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며 "칼빈주의 신학 사상 체계는 분명 현대 네덜란드의 삶과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 칼빈의 '교회와 국가'에 대한 영혼과 육체 유비, 카위퍼 더 정교하게 발전

안인섭 교수는 "카위퍼에서 붙여진 신-칼빈주의라는 용어는 16세기 제네바의 칼빈의 신학과 원칙을 19~20세기 유럽과 네덜란드의 컨텍스트에서 적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며 또한 "카위퍼가 19세기 네덜란드에서 실제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카위퍼의 정치적이고 신학적인 영향력과도 관련이 깊다"고 보았다.

안 교수는 아브라함 카위퍼의 사상이 나온 칼빈이 이해한 '교회와 국가' 관계를 소개하며 "칼빈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설명할 때 매우 독특하게 영혼과 육체의 유비를 활용하고 있다. 칼빈에 의하면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고 칼빈은 이 영혼과 육체의 유비를 인간 사회의 교회와 국가의 영역으로 확대했다"며 "영적인 세계를 통치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 교회이며 육적인 사회적 삶을 통치하기 위해서 국가를 세우셨다고 보았다. 칼빈은 이 교회와 국가가 서로 다른 법에 의해서 통치된다고 보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마치 영혼과 육체가 그렇듯이 교회와 국가는 마치 영혼과 육체가 그러하듯이 서로 혼합되지 않는다. 또한 교회와 국가는 영호노가 육체의 관계처럼 서로 분리되지도 않는다. 교회와 국가는 다만 구별될 뿐이다"며 "칼빈은 그리스도의 왕권은 영적인 것이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국가를 통해서 지상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교회와 국가는 필연적으로 파트너십을 가지고 사회와 인간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칼빈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론은 19세기 네덜란드에 와서는 더욱 정교하게 발전되어 수용되었는데 아브라함 카위퍼의 사상이 대표적이다. 카위퍼는 그의 영역 주권 사상에 근거하여 국가와 교회의 고유 영역을 각각 인정하고 있다. 그의 칼빈주의 정치 사상은 배타적인 신정 정치가 아닌 사회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며 "카위퍼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있어서 이런 관용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으며 신학적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은 국가가 교회에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부터 교회의 고유 영역을 지킬 것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특히 카위퍼의 '왕을 위하여''영역주권'사상을 소개하며 "카위퍼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교회와 국가의 권위가 세워져야 한다고 보고 있는데 1880년 자유대학 창립 연설에서 인간의 삶에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라고 하지 않는 영역은 단 한치도 없다고 하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며 "카위퍼의 사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라는 논제를 끌어 올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바로 이 그리스도의 주권 사상이다"고 했다.

이어 "카위퍼는 칼빈주의 정치 개념의 기본으로 '전체 우주를 다스리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을 제시한다. 구체적으로는 국가, 사회, 그리고 교회의 3중 지배권을 말하고 있다"며 "따라서 카위퍼의 신학은 우주론적인 특징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카위퍼는 삶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이 세워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카위퍼는 그리스도의 정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카위퍼는 세속적인 정치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왕권을 세우는 일과 관계 있다는 것이다"고 풀이했다.

끝으로 안인섭 교수는 "카위퍼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삶 속에서 자신의 신앙과는 무관하게 세속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비판하였고 세상과 분리하려는 재세례파적인 모습에 대해서도 반대하였다"며 "이런 맥락에서 카위퍼는 칼빈과 같이 중도의 길(via media)을 선택했다. 그에게 있어 영적인 세계와 물질의 세계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양자 모두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이 그리스도인을 통해 인정되어야 했다"고 카위퍼의 신학사상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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