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구세군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자선냄비 시종식을 열고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모금의 시작을 알렸다. 전국 17개 시도 330여 곳에서 한 달간 진행되는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활동에 맞춰 사랑의 온도탑도 뜨겁게 달아오를 채비를 마쳤다.

거리에서 울리는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는 매서운 한파에 움츠러든 사람들에게 어느덧 한해가 저무는 시기가 왔음을 알려준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주변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가슴을 열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올해로 95주년을 맞은 구세군 자선냄비 캠페인의 주제는 ‘함께 부르는 사랑의 멜로디’다. 외롭고 힘든 삶을 사는 이웃들과 함께 동행하자는 의미다.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마음이 자선남비에 하나둘 담길 때마다 광화문 한복판에 마련된 사랑의 온도탑 눈금도 1도씩 올라가게 된다. 올해는 최소한 사람의 정상체온인 36.5도까지 오르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에서 난파선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부둣가에 냄비를 걸어두고 모금했던 일화에서 유래됐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근교 해안에 배가 좌초돼 생긴 1000여 명의 난민과 도시 빈민을 위해 모금활동을 하던 중 한 구세군 여사관이 쇠솥을 걸어놓고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는 문구로 기금을 모은 것이 시초라고 한다.

이후 전 세계로 퍼진 구세군 자선냄비는 붉은 세 다리 냄비걸이와 냄비 모양의 모금통, 제복을 입은 구세군 사관이 종을 들고 흔드는 모습이 하나의 상징이 됐다. 종교와 상관없이 거리에서 제복을 입은 구세군 사관들이 흔드는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성탄절과 함께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운동이 시작됐음을 직감하고 마음을 여는 건 구세군 자선냄비가 거의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에 구세군이 들어온 건 1908년 영국 선교사에 의해서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1928년 12월 15일 당시 한국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준섭(조셉 바아) 사관이 서울 명동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불우이웃돕기를 시작하면서 자선냄비가 구세군의 상징이 됐다.

그로부터 95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말연시면 어김없이 거리 곳곳에 구세군의 빨간 자선냄비가 등장한다. 이런 풍경은 한국전쟁 중 피란지 부산에서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했을 정도로, 어느덧 우리 사회의 익숙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구세군 자선냄비의 역사가 95년이나 됐음에도 자선냄비로 모은 기부금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이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건 기부자가 구세군의 모금 활동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지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주요 구제사업을 밖에 일일이 드러내 알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구세군은 매년 자선냄비로 모금한 기금을 불우이웃들의 생활안정, 불평등 완화, 생계지원, 긴급구호 등을 위해 사용해 왔다. 7가지 나눔 영역을 통해 진행되는 구세군의 나눔은 기초생계, 역량강화, 환경개선, 건강증진, 사회안전 등 5가지 원칙과 방향성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구세군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구세군은 지난해 연말 거리 모금과 기업 모금을 합해 83억 원으로 국내 수해지역 봉사활동과 그룹홈 아동 지원, 캄보디아 어린이 심장병 수술지원, 취약계층 나눔키트 전달 사업 등을 벌여왔다.

그러나 구세군 자선냄비는 갈수록 거리 모금만으론 다양한 구제사업을 펼치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에서 해방되었음에도 고물가와 경기침체, 잇따른 전쟁 소식으로 사회 전반의 위축된 분위기가 차가운 날씨처럼 가슴을 얼어붙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사회를 향해 따뜻한 가슴을 여는 걸 사명으로 여겨왔다. 교회가 여러 가지 불미스런 이슈로 지탄의 대상이 되면서도 구제와 선행만큼은 어느 종교보다 앞섰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그것이 교회들만의 구제사업으로 계절적 특수인양 반짝하다 사라지는 건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국제구호개발단체인 굿피플인터내셔널이 지난 4일 취약계층에게 전달할 23억원 상당의 식료품 상자 2만3000개를 포장하는 ‘2023 사랑의 희망박스 박싱데이’ 행사를 가진 것에 주목할 점이 있다.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맞아 곡물, 과일 등의 선물상자를 주변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 건 각 교회들의 연말 자선행사와 별 차별이 없다. 하지만 이 사업이 12년째 서울시와 함께하면서 지역사회의 취약계층 돌봄사업으로 뿌리내렸다는 건 커다란 결실이다.

어려운 이웃을 향한 구제는 누가 도왔는지 그 주체를 알리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구세군이 이런 데 중점을 뒀더라면 자선냄비에 담긴 정신을 우리 사회에 확산하는데 더 오랜 시일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굿피플과 서울시의 동행도 마찬가지다.

올겨울은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더욱 견디기 힘든 계절이다. 주님은 성탄절 맞이에 분주한 한국교회에 이런 질문을 던지신다. “한국교회는 사회적 약자와 동행하고 있나”. 이 물음에 한국교회가 교회 울타리를 넘어 연말연시에만 반짝 커지는 촛불이 아니라 1년 내내 환히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의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대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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