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논산훈련소 연무대군인교회에서 신병 1200여 명에 대한 진중세례식이 거행됐다. 예장 합동 총회 산하 남전도회전국연합회가 주관한 진중세례식엔 교단 소속 목회자와 성도 400여 명이 함께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난 젊은 장병들의 앞날을 축복했다.

합동측은 지난 1995년부터 매년 논산훈련소에서 장병들을 대상으로 진중세례식을 거행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2020년부터 3년간 예식이 중단되는 고비를 맞기도 했다. 4년 만에 다시 열린 진중세례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건 그런 이유에서다.

육군훈련소 연무대군인교회에서 진행되는 진중세례식에 지속적인 열정을 쏟아온 것으로 치면 예장 통합측은 그 어느 교단에도 뒤지지 않는다. 통합 교단은 지난달 1일 가진 진중세례식이 603차에 이를 정도로 오랫동안 정기적인 진중세례식을 행해왔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이 열과 성을 다해 진행하는 진중세례식은 사회에서 군에 입대해 신병으로 훈련하는 젊은 군인들에겐 매우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게 사실이다. 이들이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사회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믿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군 복무기간을 무사히 마친 뒤 사회에 나와 신앙인으로서 각 교회에 출석하며 믿음의 분량이 성장한다는 자체만으로 한국교회엔 큰 자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 기간 중에 중단 됐던 진중세례식이 3년여 만에 일제히 재개된 건 반갑고 다행스럽다. 다만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확산은 사회 어느 곳보다 그 피해 정도가 훨씬 크게 나타날 수 있어 긴장의 끈을 놓쳐선 안 된다. 합동측 남전도회가 주관한 진중세례식 때도 코로나 집단 감염의 여파로 1개 중대가 참석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었다.

진중세례식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국토를 지키는 장병들을 말씀으로 무장시키고 십자가 군병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취지에서 일찍부터 각 교단이 적극적으로 시행해 온 좋은 제도 중 하나다. 다만 오랜 기간 제도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파생된 문제점에 대해서도 한국교회가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고 본다.

각 교단이 ​진중세례식을 진행하다 보면 응당 세례 받는 장병의 수를 가지고 비교하는 일이 생긴다. 경쟁이란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수를 가지고 성과와 치적의 기준으로 삼게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 교단은 몇 년 동안 몇 명의 장병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내용이 교계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불신자에게 세례를 줄 정도로 믿음의 길로 인도한 건 참으로 귀한 일이지만 그걸 하나의 성과와 치적으로 내세우는 건 세례의 본뜻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세례를 받았다는 것만 가지고 구원의 보증수표가 될 순 없다. 세례는 단지 언약의 증표로서 주어지는 것이요, 신앙고백을 통하여 교회의 회원으로 인정되는 지극히 가시적이고 형식적인 의식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진중세례식을 집례한 목회자들이 마치 세례를 받은 장병이 당장 구원을 받은 것처럼 선언을 남발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또 다른 문제점은 진중세례식에 참여하는 장병들에게 있다.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믿음의 길에 들어서기로 결단하는 장병들도 있지만 개중엔 별 생각 없이 와 머릿수를 채우는 경우도 왕왕 있다. 즉 거기 가면 군대에서 흔치 않은 간식을 먹을 수 있고, 동료 장병이 간다니까 군중심리로 따라가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비단 기독교의 진중세례식만이 아니다. 천주교나 불교도 상황은 비슷하다. 특히, 불교에서 행하는 수계식의 경우 주요 교단이 주최하는 진중세례식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넉넉한 간식과 선물까지 챙겨주기 때문에 세례를 받은 장병들이 불교의 수계식에도 참여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종종 벌이진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건 그 해 진중세례식으로 세례를 받은 장병 수가 1만 명이면, 수계식으로 불교에 귀의했다는 장병도 동일하게 1만 명으로 집계된다는 사실이다. 각 종교에 귀의하는 장병 수가 동일하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교계가 좀 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제는 몇 명에게 세례를 줬는가 하는 실적에 각 교단이 만족하고 도취할 때가 아니다. 한 영혼을 신앙에 뿌리내리도록 양육하는 일이 훨씬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군인교회들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예배에 참석하는 병사들의 수가 급감해 고민에 빠져있다. 이런 현실에서 세례자 수를 가지고 전도성과의 척도를 삼는 선교 전략은 곧 한계점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주님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다. 젊은 장병들 수천 명에게 세례를 주는 것도 물론 귀한 일이지만 한 영혼을 믿음의 길로 인도해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시킨다면 그보다 더 귀하고 값진 일도 없을 것이다. 교단과 군선교부, 군인교회, 군종장교가 세례자 수에 매달릴 때가 아니라 군대를 진정한 복음의 황금어장으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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