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 만리포 해변에서 북서쪽으로 10km 떨어진 바다에서 해상크레인을 적재한 부선이 유조선과 충돌해 원유 1만 810톤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나자마자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간 건 한국교회였다. 너나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봉사에 구슬땀을 흘렸다. ‘태안의 기적’은 그렇게 시작됐다.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의 충격파는 엄청났다. 서해안 167km가 완전히 기름으로 뒤덮이는 바람에 충남 서해 연안 생태계와 지역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는 등 유무형의 피해가 심각했다. 사상 초유의 해상 사고 앞에 전문가들은 피해 복구와 생태계 회복에만 20년 이상 걸릴 거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그런데 모두가 절망과 비탄에 빠진 그 순간 기적이 시작됐다. 첫 번째 기적은 모든 걸 제쳐두고 현장에 달려온 123만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이들은 검은 기름으로 범벅이 된 해안가의 모래와 자갈을 닦으며 시름에 잠긴 주민들에 용기를 북돋워 줬다. 두 번째 기적은 이런 희생과 헌신으로 단 6개월만에 죽었던 바다를 살아나고 생태계가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국내외 언론들은 이걸 ‘태안의 기적’이라 불렀다

‘태안의 기적’에 한국교회를 빼놓을 수는 없다. 전체 자원봉사자 중 65%인 80만여 명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흘린 땀과 노력을 생각할 때 기적은 거저 이뤄진 게 아니었다. 이는 분명 한국교회 역사에 긍지와 자랑으로 기록할만하다.

태안 해상 사고가 일어난 지 15년 만에 유의미한 결실이 하나 있었다. 당시 사고현장의 모습과 123만여 자원봉사자의 흔적을 담은 기록물 22만 2천여 건이 지난해 12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에 등재된 것이다. 이 기록물은 기름유출 사고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개인이 기록·생산한 22만 2129건의 자료들로 한국교회봉사단의 기록도 포함됐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됐다는 사실에 몇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선 최악의 해양 사고로 발생한 각종 문제와 그 해결 과정을 추적해 모은 수년간의 기록에 대한 세계인의 높은 평가다. 그런 점에서 이 기록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그에 못지않게 유네스코가 주목한 가치는 기름유출 사고 이후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대한민국 국민의 단합이다. 한마디로 자원봉사자의 헌신적인 참여와 그 가운데 빛을 발한 한국교회의 공동체 의식에 세계인들이 감동한 것이다.

당시 현장에 참여했던 기독교인들의 봉사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목적으로 15년 전 출범한 게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이다. 이 한교봉이 지난달 29일 명성교회에서 태안 유류 피해 극복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를 축하하고 창립 15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감사예배를 열었다.

한교봉 이사장 오정현 목사는 이날 설교에서 “한국교회가 태안 유류 피해 지역과 주민을 섬기면서 신학과 전통이 달라도 섬김에 있어서는 하나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총재 김삼환 목사도 “큰 교회, 작은 교회. 보수와 진보. 서울과 지방 구분 없이 모두가 다 함께 태안 유류 피해 복구에 동참했다”며 그 날의 의미를 되새겼다.

섬김과 봉사에 큰 교회 작은 교회,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수사(修辭)다. 실제 태안 기름유출 사고 피해 극복 현장이 그랬다. 그러나 역으로 사회와 시대의 어려움에 한국교회가 한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이다.

이날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재 축하 말고도 축하할 장면이 또 있었다. 군포제일교회 권태진 목사가 태안 유류 피해 극복 참여한 25개 교단, 1만 교회를 대표해 ‘섬김 봉사상’을 수상한 일이다. 권 목사는 기름유출 현장에 ‘사랑의 이동 밥차’를 보내 자원봉사자와 피해 주민들에게 45일 동안 2만여 끼의 식사를 제공하는 등 봉사에 솔선수범했다.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로 검은 바다, 죽음의 해안이었던 현장은 10년 만에 완전히 회복됐다. 지금은 어디가 기름으로 뒤덮었던 피해 현장인지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제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사람의 기억력은 비상한 능력을 지녔지만 때로 기억하고 싶은 것과 잊고 싶은 것을 구분한다. 서해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난 지 15년이 흘렀다는 건 이제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보다 잊은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힘들고 아픈 기억은 잊는 게 약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오래오래 기억할 일이 있다. 15년 전 그날 전국에서 구름떼처럼 모여든 한국교회 성도들의 희생과 헌신 없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을.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멀어져 가는 현장, 만리포 인근에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 뒤인 지난 2017년 9월에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이 기념관 1층 로비에 세워진 벽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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