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만 장로
신동만 장로

2023년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우리 민족은 해방이 된 지 78년째로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한은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과 김일성의 나라 북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이념과 사상과 무력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며 반목하고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전 세계의 화약고가 된 지 오래이며, 세계의 최대 강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가 남북한을 둘러싸고 있다. 한반도의 현실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사회주의 국가들의 이념과 군사, 경제와 정치, 사회와 문화 등 모든 이해관계로 뒤섞여 있다. 남북의 문제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4대 강국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중의 난제이다. 김일성의 나라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신(神)의 위치에 올려놓고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들의 혈통으로서 주민들을 억압하며 자신의 의도에 반하는 자는 누구든지 무자비하게 살상함으로써 공포정치로 북한 주민들을 강제로 통제하고 있다. 주민들은 인간의 삶의 기본인 의식주는 물론 거주 이전의 자유를 비롯한 모든 자유를 박탈당하며 서로 감시하고 서로 의심하며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한 채 오로지 김일성 일가에 충성하는 것을 인간의 최대의 행복으로 알고 살아가는 꼭두각시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 한민족은 한 핏줄로 상고시대부터 통일성을 유지한 5천 년의 역사를 가진 같은 민족이다. 우리 민족은 장구한 세월 동안 독자적인 언어와 독특한 전통과 문화를 이어왔다. 아울러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침을 견뎌왔을 뿐만 아니라 침략자를 격퇴하고 도전과 응전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 위대한 민족이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먼저, 계묘년 새해가 시작됨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구원과 이에 반하는 망령된 행위에 관한 경계의 말씀을 전하고, 이어서 21세기 대한민국과 한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 민족의 탁월한 영적인 능력과 기상(氣像)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일깨워 대한민국과 한민족이 나가야 할 길과 역할을 성경말씀을 근거로 제시하고자 한다. 글의 시작은 기원전 2166년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조명해 보고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시작된 인류문명의 질서와 인간의 생사화복과 국가의 흥망성쇠의 본질을 성경말씀을 통해 21세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과 한민족과 한국교회에 적용해 볼 것이다. 한민족은 기원전 2,333년 한반도에서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으로부터 5천 년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의 사명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이어받아 북쪽의 김일성 나라에 붙잡힌 불쌍한 백성들을 끌어안고 잃어버린 옛 땅을 회복하여 더 큰 대한민국, 세계 초일류 통일강국과 선교강국으로 나가는 일이다. 이 일은 인간의 이성과 감성의 영역이 아닌 차원이 다른 영적인 영역으로 접근할 것이다. 영적인 영역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하나님의 인도 교통하심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의 영역이며 이적과 기사의 현장이다. 출애굽 당시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이 나며 그 많은 백성들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모세가 손을 들어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것과 같이 불치병이 낫고 수많은 난제가 일순간에 해결되고 동구권과 소련 공산당이 순식간에 망하는 것과 같은 이성과 감성을 초월하는 믿음의 영역인 것이다. 한강의 기적도 마찬가지며 수천 년의 보릿고개를 순식간에 넘어선 것도 기적 중의 기적의 일이다. 이승만이 터를 닦고 박정희의 신앙전력화를 통해서 이루어진 기적들이다. 이사야 55장 8~9절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의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한민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는 사명을 받고 출애굽하여 광야 40년을 회고하면서 체험한 믿음의 말씀을 신명기 1장 33절에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고 하였다. 우리는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노력을 한다. 차제에 신앙생활을 수십 년을 해도 때로는 나는 누구인지 정체성이 헷갈리기도 하고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하나님의 의도와 뜻은 무엇인지 잘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어 평생을 어린아이처럼 "이것주세요. 저것주세요"하며 자신의 이익과 필요만을 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일상은 아닌지 자신의 믿음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할 때 상상력과 창의력과 꿈과 비전 등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주셨지만, 현실적으로 인간은 감성과 이성의 범위 내에서 사고하는 버릇이 있다.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믿음의 영역은 다르고 달라야 한다. 이는 차원이 다른 영적인 영역으로 이성과 감성을 초월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분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이끄시는 것을 세미하게 체험적으로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믿음 건너편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영역이 또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앞서 행하시며 거할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계신 분이다. 이는 하나님의 영역으로 말씀의 영역이고, 믿음의 영역이며, 기도의 영역이다.

각자의 믿음은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만큼 기도하고 말씀을 이해한다. 각자는 말씀을 깨달은 만큼 기도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믿음의 분량도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기도하는 만큼 말씀을 깨달을 수 있으며 믿음의 분량 역시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겨자씨보다 작은 믿음도 산을 옮길 수가 있으며 이보다 더 큰 믿음의 소유자는 온통 하나님의 관심사항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주 만물로부터 개인의 세부 일상까지 각자의 믿음으로 상상해 볼 것을 권한다. 분명한 사실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것이다. 정리하면 말씀과 기도와 믿음은 각자의 분량만큼 현실에서 역사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도바울과 같은 삶이 좋은 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은 창세기 말씀에서 천지만물과 우주의 질서는 물론 나와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창조주이심을 천명하고 있다. 창세기 1장 1~5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며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성경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의 주관자시며 개인과 국가와 민족의 운명은 물론 우주의 질서를 통치하시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전지전능하시고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요한은 태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을 기록하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5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 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이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구약과 신약 성경의 모든 말씀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말씀임을 설명하고 있다. 요한복음 20장 31절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의 저술목적을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 21장에 기록하기를 요한복음 21장 25절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며 복음서를 마쳤다. 태초로부터 예수께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시며 육신으로 오셔서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하시고 약한 것을 고치시고 이적과 기적을 행하시고 죽음 후에 부활 승천하시고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의 모든 역사의 현장을 세상 끝 날까지 기록한다면 이는 과장된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도요한은 다른 제자들이 잘 볼 수 없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영적인 눈으로 본 것이라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고 지금도 함께 하시며 세상 종말까지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심의 비밀을 깨달아 기록한 말씀이 바울의 서신서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에베소서 3장 8~11절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고 했으며, 빌립보서 2장 5~8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하였다.

골로새서 1장 13~20절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와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하였다.

히브리서의 저자도 태초부터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히브리인인 동족들에게 알리고 있다. 히브리서 1장 1~3절 "옛 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로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였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 기록된 22장 12~13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음에 계속>

신동만 장로(국군중앙교회, 예비역 육군소장,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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