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 10일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대해 헌법재판소(헌재)에 위헌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죄형 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 비례성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내용이다.

‘대북전단금지법’은 지난해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에서 강행 처리됐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정부가 법을 공포한 직후에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등 27개 대북 관련 단체들은 헌재에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북한에 실상을 알리는 전단을 살포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게 핵심이다.

통일부 측은 권 장관이 ‘대북전단금지법’의 위헌 여부를 다루고 있는 헌재에 의견서를 제출한 것에 대해 “전단 등 살포 행위를 법률로 규제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 죄형 법정주의 등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 입장이 전단 등 살포를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했다.

통일부의 설명대로라면 권 장관이 헌재에 의견서를 제출한 의미가 법률이 상위법인 헌법의 규정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등의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이란 얘기다. 그런데 과연 그런 의미로만 국한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에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잘못된 결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5월 7일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대북방송이나 북한에 기구를 통해 보내는 부분에 대해서 현 정부가 법으로 금지를 해 놓았다”며 “그것이 접경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닌 이상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한 것이다.

당시의 언급은 대통령 당선인 신분에서 민간 차원의 북한 인권 운동을 정부가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타당치 않다는 식의 기본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곧이어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윤 대통령과 똑같은 의견을 낸 것으로 볼 때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닌 문제가 있는 ‘대북전단금지법’에 손을 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 법의 요지는 비교적 간단하다. 상호 비방 중상하지 않기로 한 ‘남북 합의’에도 일부 민간단체들이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반복해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심각한 위험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합의서에서 규정하고 있는 금지사항, 즉 대북 전단지를 살포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지난 정부가 주장해 온 ‘대북전단금지법’ 제정의 첫 번째 정당성은 ‘남북 당국 간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 금지 합의 준수’라는 명목에 있다. 이걸 대북인권단체들이 지키지 않아 접경지 주민의 안전에 심각한 위험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남북 간에 합의만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마음대로 제한해도 되나. 결국,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5년 2월에 이미 “남북한의 합의 사항은 ‘당국 간 상호 비방 금지’이므로 이를 근거로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여기서 명분으로 등장한 게 접경지 주민의 생명과 안전이다. 당시 정부와 여당이 국내외의 빗발치는 비판 여론에 방패로 삼은 것도 바로 이 문제다. 그런데 북한이 대북 전단 풍선에 고사총 사격을 가해 그 낙탄이 우리 쪽으로 넘어온 사건은 지난 2014년 10월 딱 한 차례 있었다. 전단지 살포로 북한이 포를 쏜 사례는 그 이전과 그 이후에도 없었고 당시 고사포 낙탄에 따른 우리 국민의 인명 피해도 전혀 없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것을 과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법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률은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삶을 보다 안락하게 하고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한다. 그런데 이 법은 태생부터 달랐다. 국민이 아닌 북한의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법이란 비판이 국내외에서 쏟아진 건 그런 이유에서다.

북한 김여정은 지난해 6월 4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에 “‘탈북자’라는 것들이 전연 일대에 기어나와 수십만 장의 반공화국 삐라를 우리 측 지역으로 날려 보내는 망나니짓을 벌려놓았다. 남조선 당국은 그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분명히 말해두지만, 또 무슨 변명이나 늘어놓으며 이대로 그냥 간다면 그 대가를 남조선 당국이 혹독하게 치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협박과 가이드라인 제시를 동시에 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김여정이 말한 그대로 움직였다. 통일부가 바로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정부 입법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더니 곧바로 국회에서는 민주당 송영길 의원 등 다수의 여당 의원들의 주도로 소위 ‘대북전단금지법’이 발의됐다.

대북 전단 살포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직접적으로 가할 위해는 하나도 없다. 다만 그런 행위에 비상식적으로 반발하는 북한의 협박과 공갈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당시 정부와 여당은 보란 듯이 전대미문의 법을 만들었다.

헌재가 직시해야 할 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전단지를 풍선에 띄워 보내는 대북 인권단체인가, 전단지에 광분하는 북한 권력자들인가. 또 북한과의 합의와 국민의 기본권,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무거운 헌법의 가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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