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자유주간 연합예배
지난달 25일 제19회 북한자유주간 연합예배에 참석한 주요인사들이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기독일보 DB

지난달 25일부터 1일까지 진행된 제19회 북한자유주간은 북한 주민들이 처한 비참한 인권 상황을 다시 상기시켰으며, 우리와 국제사회가 어떻게 그들을 자유케 할 수 있는 지를 다양한 방면에서 고찰한 매우 의미 있는 기간이었다.

북한자유주간은 미국의 대표적 북한 인권 단체인 북한자유연합(대표 수잔 숄티)과 국내외 탈북민 단체들이 지난 2004년부터 매년 한국과 미국을 번갈아 가며 개최해 왔다. 지난 2004년 4월 28일 미 상원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기를 촉구하며 워싱턴 D.C. 의회 공터에서 외쳤던 ‘자유 북한’이라는 구호가 발단이 됐다고 한다.

북한자유주간은 매해 4월 마지막 주에 열려 왔지만, 올해는 코로나19와 한국의 대선 관계로 미뤄져 이번에 열리게 됐다.

공식 개막식은 지난 26일 있었지만, 그 하루 전 있었던 ‘북한자유주간 성공적 개최를 위한 연합예배’가 사실상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난 19년 동안 이 행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미국의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 또한 기독교인이며, 그가 이 사역을 계속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기독교 신앙에 있다. 숄티 대표는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독교 신앙을 떠나서는 이 사역을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던 바 있다.

숄티 대표는 26일 십년클럽 주최로 에스더기도센터에서 열린 ‘복음통일 세미나’에서도 북한 인권 사역에 임하는 그의 신앙적 동기를 밝혔다. 숄티 대표는 “이 지구상에서 북한 주민들보다 더 고통받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악마같은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렇기에 그들을 위하는 것이야 말로 예수님을 위하는 것”이라고 했다.

매년 북한자유주간을 이끌어 가고 있는 이들 중엔 솔티 대표 외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다. 숄티 대표의 말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기독교인으로서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행사에 참여하는 탈북민들 중에도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듯 북한자유주간, 나아가 국내 북한 인권 운동의 핵심에 기독교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올해 북한자유주간에도 대형교회나 교계의 주요 연합기관의 참여가 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독교인들이 이 운동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단지 개인으로서의 기독교인일 뿐이다. 대형교회나 연합기관처럼 상징성과 영향력은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이다.

숄티 대표는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체사상은 종교다. 주체사상의 권위자인 토마스 벨케 박사(Dr. Thomas Belke)는 ‘주체사상은 경배와 경의, 기도, 성소, 믿음, 종교적 의식, 조직적 교리, 찬양의 모든 것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고안한 탈북민 故 황장엽 씨에 따르면, 오직 기독교의 복음만이 북한 주민들을 옥죄고 있는 주체사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했었다.

북한 인권 운동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도 오늘날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가장 앞장서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면 이 운동이 기독교에서 저변을 확보하고 핵심 어젠다로 자리잡고 있느냐, 하면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수잔 숄티 대표
수잔 숄티 대표가 제19회 북한자유주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난달 26일 저녁 진행된 복음통일 세미나에서 강연하던 모습. ©에스더기도운동

아울러 북한자유주간을 상징하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수잔 숄티 대표다. 그가 초강대국인인 미국의 시민이라는 점이 여기에 크게 작용했겠지만, 왜 북한 인권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이냐 하는 것도 한 번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북한 주민을 ‘강도 만난 이웃’으로 표현한다. 성경에서 그와 같은 이를 도와준 이는, 그 시대 소위 ‘주류’라 일컬어지던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니었다.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기고, 상처를 싸매주었던 이는, 유대인이 상종하지 않았던 ‘사마리아인’이었다.

한반도가 자유 통일을 이루고 북한 주민들이 마침내 해방되는 그날, 그들은 과연 누구를 ‘이웃’으로 생각할까.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다시 떠올릴 때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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