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4년 만에 참여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9월 22일 “윤석열 정부가 자유, 민주주의, 인권 같은 가치 기반 외교를 지향하는데 북한의 반인권 범죄를 규탄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며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를 공식 확인했다.

우리 정부가 공동 발의를 결정한 ‘북한인권결의안’은 사회적·문화적·인도적 문제를 다루는 유엔 총회 제3위원회 결의안으로, 2005년부터 17년 연속 채택됐다. 올해도 미국, EU 등 50~60개국이 공동 발의국으로 동참한 가운데 올 연말 유엔총회에서 18년 연속으로 채택될 것이 확실시된다.

‘북한인권결의안’은 북한 내 조직적이고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한 유엔 차원의 우려 표명과 함께 즉각 중단 촉구, 인도적 기구의 접근 허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을 강제할 수단이라기보다는 북한의 심각한 인권유린에 국제사회가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위해 연대하는 의미가 있다. 이런 결의에 다른 나라도 아니고 한국 정부가 빠지는 건 어떤 구실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2019년부터 4년 연속 유엔 차원의 결의안 공동 발의에 불참했었다. ‘남북 관계의 특수 상황을 고려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국제인권단체들은 “인권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이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에 침묵하는 건 이율배반”이라며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한국이 4년 만에 다시 공동제안국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국제사회에선 복귀를 환영하며 반기는 분위기다. EU는 21일 VOA(미국의 소리) 방송에 “인권을 존중, 보호하라고 북한에 촉구하면서 국제적 단결을 보여주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로 한국 정부의 결단을 높이 평가했다.

윤석열 정부가 4년 만에 ‘북한인권결의안’ 동참을 결정하게 된 건 유의미하다. 먼저 윤 대통령이 지난 20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 정권이 아닌 주민을 중심에 두고 자유와 인권 차원에서 북한 문제에 접근하겠다고 밝힌 연장 선상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인다면 경제·군사·안보 지원을 하겠다는 이른바 ‘담대한 구상’을 밝힌 바 있지만,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노력과 인권 문제는 별개로 다루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윤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문 정부 때 사문화됐던 ‘북한인권법’을 되살리는 게 무엇보다 급선무다. 국민의힘이 자당 몫 이사 5명을 추천한 데 이어 통일부가 권영세 장관 몫의 이사 2명을 추천한 것도 민주당의 이사 추천 거부로 표류 중인 ‘북한인권재단’ 출범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북한인권법’은 북한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며 탈북 난민의 지위를 인정하고 국제적인 지원을 약속을 담은 법률로 2016년 3월 2일 국회를 통과해 3월 3일 공포됐다. 그러나 문 정부는 지난 2018년 6월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위해 마련했던 사무실마저 비용 절감을 이유로 폐쇄하는 등 사실상 ‘북한인권법’을 용도폐기해 버렸다. ‘북한인권법’의 핵심이나 마찬가지인 재단 설립의 근거를 지워버린 것이다.

교계는 정부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복귀 움직임을 지지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그에 못지않게 법 시행 6년 동안 정치적으로 사문화된 ‘북한인권법’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하루속히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는 지난 9월 25일부터 열리고 있는 제19회 북한자유주간 행사에서도 거론됐다. 9월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김태훈 변호사(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명예회장)는 2004년 미국의회에서 통과된 ‘북한인권법’이 한국에선 10년 뒤에 제정되고도 정치문제로 ‘북한인권재단’ 출범이 지연되면서 사문화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문 정부가 북한 인권을 외면하는 것에 거침없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온 수잔 숄티 대표(북한자유연합, 디펜스포럼)는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최악의 독재정치 아래서 신음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며 “주체사상을 마련하고 이후 탈북한 고 황장엽 선생은 인권은 정치를 떠나 인류 보편의 문제라며, 핵무기 해결보다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함을 강조했다”고 했다.

어떤 나라든 인권 문제는 정치·외교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문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면서 “남북 관계의 특수 상황을 고려했다”는 건 북한 권력층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북한 주민의 삶 전체를 외면한 반인도적이고 비정한 직무유기에 지나지 않는다.

윤 정부가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으로 복귀하고 ‘북한인권재단’의 출범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잔 숄티 대표의 말대로 “비무장지대 남쪽이 아니라 북쪽에서 태어난 것이 유일한 불행인 사람들에 대한 배신”은 곧 성경적으론 죄악이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