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만 장로
신동만 장로

적의 침략에 대비하여 동양에서는 성곽을 구축하고, 서양에서는 길을 닦았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는 시황제 때부터 북방 유목민족인 흉노족, 몽골족의 침략에 대비하여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고, 명나라 때에 완성하였다. 특히 수도인 북경을 중심으로 더욱 견고하게 이중으로 성벽을 쌓았다. 지형의 높낮이를 반영하면 실제 성벽의 길이는 6,352km라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수도 서울만 하더라도 한양성벽이 있고, 북한산성이 있다. 지방에 가면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여 남서해안 지역 주요거점에 성벽들이 있으며, 삼국시대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경계 지역에 성벽이 있다. 한강을 중심으로 고구려와 백제의 경계선에 토 성벽을 쌓았다.

로마제국은 초기에 왕정으로 시작하여 공화정으로 이어지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와서 지중해 전 지역인 천하를 평정하고 독재 권력을 확립하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옥타비아누스가 이를 수습하였다. 원로원은 그의 공을 높여서 '아우구스투스'(존귀한 사람)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아우구스투스는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황제가 됨으로써 로마의 제정시대가 시작된다. 아우구스투스는 40년에 걸쳐 도로와 수도를 정비하고 로마를 아름답고 살기 편한 도시를 만들어 100만의 인구가 사는 세계 제일의 도시로 만들었다. 길은 직선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아래 로마군단의 공병대를 운영하여 오늘날의 고속도로와 같은 길을 닦아서 3세기 말에 로마제국은 약 8만5,000km의 길을 닦고 수도 로마와 연결했다. 즉 전투에서 이긴 점령지대와 로마를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하고 이 도로를 이용하여 적의 외침이나 점령지의 반란을 신속히 제압하기 위하여 편리하고 효율적인 길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로마는 약 2백 년간 '팍스로마나'(로마의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

진시황제는 성을 만들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나, 로마는 길을 만들어 대비했다. 동서양인의 의식과 생각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여 이후 서양은 기독교와 함께 세계의 중심국가로 자리매김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참고로 로마는 세계를 세 번 통일하였다. 최초 로마는 길 덕분에 정치적으로 통일했으며, 두 번째는 기독교로 통일했으며, 세 번째는 로마법으로 통일하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된 것이다. 이는 로마제국을 만든 핵심 중의 핵심이다.

성경 말씀에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와 같은 말씀이 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의 중심 중의 중심, 정곡을 찌르는 말씀이다. 마태복음 6장 33절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이다. 이는 복음의 비밀이며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의 핵심이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는 복음서의 핵심 말씀으로 신약과 구약의 완성을 선포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의 말씀으로 이 중에서 핵심 말씀을 소개하면 마태복음 6장 25절~34절 말씀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으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니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는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여러 편의 편지를 작성하여 유대교의 완성이 예수그리스도에 의한 기독교임을 강조하였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와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작성한 로마서에 교리적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약의 의문의 율법과 규례와 법규로 얽매이는 모든 것을 폐하고 오직 믿음으로 자유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과 기쁨으로 받을 것을 정리하여 선포하였다.

특히 빌립보는 유럽의 첫 관문으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에게 성령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복음을 전하도록 인도하신 곳이다. 이는 유대 땅 아시아에 머무르던 하나님을 로마제국으로 전파하여 전 세계인이 믿도록 전도한 곳이다. 그 첫 열매가 자주장사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한 빌립보 교회였다. 바울과 실라는 이상한 도를 전한다는 모함으로 빌립보 감옥에 붙잡혀 매를 맞고도 한밤중에 일어나 기쁨으로 하나님을 감사하며 찬미하자 지진과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나 간수장이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묻자 사도행전 16장 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니"라는 말씀을 전한 곳이다. 후에 사도 바울이 네로황제의 박해로 로마감옥에서 처형을 기다리며 지난날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복음전파의 삶을 되돌아보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작성한 편지가 빌립보서이다. 사도 바울은 엄청난 고난과 핍박과 고통 속에서도 파노라마와 같은 자신의 지난날의 삶의 흔적들을 생각해 볼 때 모든 것이 감사와 기쁨과 소망과 평안으로 가득 찼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비밀이며, 성경말씀인 계시의 핵심이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사도 바울과 같은 삶으로 일제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고, 공산주의자와 싸웠고, 전쟁을 극복했으며, 극한의 가난 속에서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삼각산의 기도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었다.

한국교회는 이제 다시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직 말씀,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돌아가야 한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구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이방인이 아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임을 알아야 한다. 거듭난 새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엄청난 축복이며 위대한 일이다. 모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거듭난 개인은 세계 일등 시민이 되는 것이며, 국가는 세계의 중심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이 땅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했지만, 믿는 자들도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구하려면 주일예배를 참석하거나 별도의 기도시간을 정해 놓고 새벽기도나 철야기도에 참석하여 기도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믿는 자들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국가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임을 알기 때문에 자녀로서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말씀 곳곳에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은 무엇인가? 말씀과 기도와 감사 찬양과 행함 있는 삶을 먼저 구하는 것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마음 판에 새기지 아니하면 우리의 중심이 사라지기 때문에 모래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다. 기도는 능력이며 현장이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기도는 집중해서 간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중언부언하면 안 된다. 찬양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써 늘 감사함으로 피드백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행함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하나님의 은혜만을 강조하여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시겠지 하며 계명을 범하는 것이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것도 아니며 죽은 것이다. 행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하는 것이다. 행함의 기본은 십계명이다.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시는 우리의 양심과 마음속으로 짓는 죄악도 십계명의 연장선이며 계명의 완성이다. 먼저 말씀과 기도와 감사 찬양과 행함 있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책임져 주시고 채워주신다는 것이다.

다음은 하나님의 의(義)를 구하는 삶이다. 자신의 이(利)를 먼저 구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먼저 구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살면 나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주세요, 저것주세요"라고 구하는 것은 우리가 어린아이 때 부모에게 구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부모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가 행하고 따르는 것처럼, 갓난아기같이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등 자신의 이익을 먼저 구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어른이 되고 노인이 돼서도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하며 어린아이와 같이 매일 구한다면 얼마나 아버지께서 실망하시겠는가. 육신적으로는 어른이고 노인인데도 여전히 영적으로는 갓난쟁이로 머물러 성장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부모가 답답하고 괴롭고 때로는 화가 나실까. 그리고 인간의 본분은 의리를 지키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과 은총을 주셨다면 끝까지 감사하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많은 분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음에도 이를 끝까지 순종하지 못하고 믿음의 본을 저버리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종종 본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말씀과 기도와 감사 찬송과 행함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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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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