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수 교수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찬양과 예배학과 교수)

신약성경의 첫 번째 말씀은 과거 역사를 연결하며 시작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 예수님은 선지자를 통해 약속된 메시아 곧 그리스도시며 다윗의 자손입니다(사 9:7). 또한 아브라함의 족속과 후손들을 통해 언약을 이루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신약성경과 함께 우리의 예배는 구약성경의 말씀을 기초로 합니다. 과거 예언의 말씀을 통해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관되시고, 신실하시고 말씀하신 것을 모두 이루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끊임없는 신뢰와 온전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을 공관복음(共觀福音)이라고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으심, 부활 그리고 재림에 대한 공통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복음서로 시작하며 압도적으로 비중 있게 다룬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예배의 목적이자 중심임을 말해줍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했습니다(마 2:15, 4:3, 8:29, 26:63).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7) 유대인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는 것은 신성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감은 매우 특별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임마누엘로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하나님의 신성한 아들이신 예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찬양받으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 동방박사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경배를 통해 예수님이 참된 ‘신’이심을 보여줍니다(마 2:2, 11). 또한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셨던 말씀은 다른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말씀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신’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예배했음을 보여줍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마 14:33)

유대인들은 늘 하나님 한 분만이 예배받으시기 합당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유일한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으로 제자들을 비롯해 그분을 따르던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예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배자로서 우리는 예수님이 완전하신 인간이심과 동시에 완전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또한 다윗의 자손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예배하며 찬양합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을 통해 교회의 기원과 목적을 찾습니다. 마태는 새롭게 교회 구성원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본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 이 복음서를 작성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의를 표하는 경배와 문둥병자와 회당장이 예수님의 도움을 구하려 예수님 앞에 절하는 모습을 통해 교회가 무엇보다 예배 공동체임을 강조합니다(마 8:2, 9:18).

산상수훈(마 5-7장)을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와 하나님에 대한 예배 공동체 일원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리스도 공동체의 많은 예배의 기초와 양식들이 마태복음을 통해 발견됩니다. 예수님은 침례(세례) 요한을 통해 침례를 받으셨고, 기독교인들은 이후 침례를 통해 주님을 따랐습니다(마 3:15). 그리고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앞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마 9:27, 20:30-31)과 아픈 자녀를 두었던 부모들의 탄원(마 15:22, 17:15)은 이후 공예배에서 흔히 사용되는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키리에)”라는 예전이 되었습니다(마 9:27). 예수님께서 몸으로 여기신 빵과 피로 여기신 잔을 주셨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는 정기적으로 성찬에 참여합니다(마 26:26-28).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환영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기념합니다(마 21:9). 우리 예배자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어디에서든 세례(침례)를 받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며 시작됩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되고 유대인들이 소망해왔던 하나님의 통치는 예수님의 사역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선포는 전인적인 응답을 요구하지만 우리는 복음을 단지 믿는 부분적인 응답만을 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믿는 것보다 회개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는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변화시키는 것이며 삶의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분의 주권 아래 우리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말로서의 고백만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므로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을 걸으실 때 두 명의 어부를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막 1:17) 그들은 예수님을 단지 경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전인적인 순종을 통해 응답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주일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 생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는 자기 선언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예배자의 삶입니다. “곧 그들은 그들의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막 1:18)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말씀하셨습니다(막 8:31). 그러나 희생해야 할 사람은 ‘나만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4-35) 예수님을 처음 따랐던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정치적으로 승리해 동참할 것을 기대했지만 예상치 못한 희생과 섬김의 부르심에 직면했습니다(막 10:43-45).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궁극적인 승리는 로마인들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인들의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예배자들은 하나님을 경배와 찬양으로 영광 돌릴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굴복시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있는 희생 제물로 드리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범적인 예배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성전 헌금함에 적은 돈을 넣었던 가난한 과부가 큰돈을 넣은 부자들보다 더 많이 바친 것으로 인정하셨습니다. 그 과부는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입니다(막 12:44). 또한 한 여인이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향유를 더 좋은 데 사용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에도 예수님은 그 여인이 ‘아름다운 일’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4:6). 그러므로 우리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을 경외할 때,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드리며 온전히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예배자의 본분입니다.

프랑스 샤르트르 성당 정문에 새겨진 그림에서 우리는 사복음서에 대한 상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상징들은 에스겔(겔 1:10)과 요한(계 4:7)의 환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날개 달린 사람은 마태를, 날개 달린 사자는 마가를, 날개 달린 소는 누가를, 독수리는 요한을 나타냅니다. 왜 마가를 사자로 상징했을까요? 사자는 강인함과 힘 그리고 왕족을 나타내며 이는 마가복음에서 강조되는 예수님의 특징입니다.

마리아와 사가랴가 예배를 드리는 첫 장부터 시작해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눅 24:53)까지 누가복음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로 넘쳐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신 구원의 역사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기쁨의 노래(눅 1:46-47)와 사가랴의 선포(눅 1:68) 그리고 천사들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예수님을 찬양합니다(눅 2:14).

누가복음은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지 잘 알려줍니다. 우리는 마치 아기 예수님을 본 목자들처럼 “듣고 본 모든 일이 천사들에게 들은 것과 같았으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면서 돌아가는 자들”입니다(눅 2:20).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고침 받은 중풍병 환자에 공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자들”입니다(눅 5:25). 또한 백부장과 함께 예수님의 죽으심을 목격하면서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입니다(눅 23:47).

누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배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심을 인정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예배는 한 구절만 기록합니다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눅 24:52) 오히려 누가는 성부 하나님에 대한 예배에 더 집중합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이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눅 10:21)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기쁨의 예배는 누가복음에 나타난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기쁨으로 충만하실 때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셨습니다. 누가는 예배를 ‘기쁨’으로 묘사했으며 마리아는 구세주를 기뻐했습니다(눅 1:47). 그리고 예수님께서 종려 주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군중들은 큰 소리로 기쁘게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눅 19:37). 또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을 큰 기쁨으로 기념했습니다(눅 24:52).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예배 가운데 기뻐합니다. 기쁨은 천사가 전해주는 기쁜 소식에 대한 당연한 반응입니다. 누가는 우리에게 언제나 넘치는 기쁨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예배는 성령님이 함께하는 예배이며 예수님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들과 동참하십니다(눅 1:67-68, 2:27-28).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지만, 이것은 단순한 인간의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예배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부어 주시고 우리 마음에 채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기쁨으로 넘쳐나며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인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 성찬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섬기기 위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배의 본질이 누가가 전하는 말씀 속에 담겨 있습니다. 누가는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로 자유케된 예배자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예배의 분명한 목적과 본질을 깨달음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자로 설 것을 강조했습니다.

누가는 우리들이 그리스도께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예배자들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믿고 선포하며 그들의 신앙을 고백했으며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나아갔습니다(눅 9:18-20).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에 대한 반응으로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을 기쁜 마음으로 예배하며 존귀와 능력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눅 19:38)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찬양과 예배학과 교수)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가진수 #예배가이끄는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