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모 대학의 ‘채플’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대체과목 개설 등을 권고한 것에 대해 기독교 사학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교계는 인권위의 권고가 도를 넘은 사실상 종교 사학에 대한 자율성 침해라는 입장이다.

국가인권위는 얼마 전 모 대학의 필수 교양과목인 ‘채플’이 재학생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이 대학에 대체과목 신설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대학에 보낸 권고문에서 △국내 사립대학 가운데 30% 이상이 종립대학인 점 △대부분의 학과가 종파교육과 직접 연관이 없는 일반학과로 구성된 점 등을 들어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로 그 학생이 특정 종교교육을 받아들이겠다는 ‘동의’로 추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학생이 대학을 선택할 때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대학이란 걸 사전에 알았기 때문에 ‘채플’에 동의한 것이란 대학 측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국가인권위가 기독교 사학이 실시하는 ‘채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에 교계와 관련 단체들은 마뜩잖은 분위기다. 인권위가 이 같은 내용의 권고문을 해당 대학에 보낸 사실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 4일 사학법인 미션네트워크는 한국교회총연합과 함께 발표한 성명에서 “최근 잇따른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독교대학 ‘채플’ 관련 권고는 헌법과 교육기본법에도 위배되며 판례에도 맞지 않는 조치로서 마땅히 철회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교회언론회도 5일 발표한 논평에서 “최근 인권위는 기독교 사학에서의 ‘채플’이 종교의 자유 침해라는 엉뚱한 결정을 내려, 해당 대학에 ‘채플’ 대체과목이나 대체과제를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압력을 가하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압력으로 규정하면서 “종교의 자유를 정면에서 훼손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교계가 해당 대학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국가기관이 또 다시 기독교 대학의 ‘채플’을 건드렸다는 데 있다. 이는 과거에 숭실대에서 ‘채플’ 문제가 제기됐을 때 대법원이 대학의 손을 들어준 판례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재차 문제를 제기한 속셈이 따로 있지 않겠느냐는 거다.

국가인권위의 이번 권고 조치를 놓고 과거 대법원이 기독교학교의 ‘채플’에 대해 서로 다른 잣대로 판결한 것이 다시 주목받는 상황이다. 2004년 대광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강의석 군은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채플을 거부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법정 다툼으로 번졌고 결국 대법원은 고교 평준화 정책으로 재학생에게 학교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점을 들어 강 군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기독교 대학의 ‘채플’은 중·고교와는 전혀 다르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숭실대의 경우 지난 1998년 채플을 이수하지 않아 졸업할 수 없게 된 재학생이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은 “사립대학은 신앙을 갖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종교교육 이수를 졸업요건으로 하는 학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판결해 대학 측의 손을 들어줬다.

교계는 이번 인권위의 권고가 기독교 대학의 ‘채플’을 합법으로 판결한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또 다시 논쟁의 중심으로 끌고 오려는 분명한 의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건 최근 일부 기독교 대학 내에서 재학생들이 ‘채플 거부 운동’을 벌이며 이를 종교의 자유, 인권문제로 연결시키는 것과도 결부돼 있다.

이런 문제의 근본 배경에는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이후 3월 본격 시행되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있다. 교계와 관련 단체들은 이 법의 궁극적인 목표가 사립학교의 건학이념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일반 국공립대학과 똑같이 만들려는 종교색 지우기 시도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기독교 대학들이 실시하는 ‘채플’은 교회 예배처럼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다. 그 학교가 세워진 건학이념의 실현이자 목적이기도 하다. “사립대학과 학생은 사법상의 관계로, 입학과 동시에 학칙과 규정에 대한 포괄적 승인이 이뤄진다”는 법원의 판결에서 보듯이 그 학교를 선택한 학생은 자신의 종교와 무관하게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가인권위가 해당 대학에 내린 조치는 헌법에 보장된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더구나 기독교 대학을 선택한 학생들이 ‘채플’에 참석함으로써 실현되는 가치를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한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마저 의심될 정도다. 국가인권위의 종립학교에 대한 ‘감 놔라 배 놔라’식 간섭과 월권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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