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이 17일 제헌절 제74주년 경축사에서 ‘개헌’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국회의장 직속기구인 ‘개헌자문회의’를 구성하고자 한다”며 여야에 개헌 논의를 위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요청했다. 김 의장은 “권력 분산과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며 현행 대통령제와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러나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의 ‘개헌’ 제안이 아직 원 구성도 마치지 못한 국회 현실에 비쳐볼 때 앞뒤가 거꾸로 됐다는 비판이 나올만하다. 여야는 17일에도 원 구성 협상을 마치지 못해 입법부 없는 제헌절을 보냈다. 여당은 야당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와 행정안전위 둘 중 하나만 맡아야 한다, 야당은 둘 다 맡겠다고 맞서면서 한 달 넘게 국회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제헌절에 국회의장이 ‘개헌’ 추진에 의지를 밝힌 것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과도한 힘이 집중되는 현행 대통령제의 문제점과 ‘승자독식’ 선거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는 수긍이 가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불과 두 달 전까지 여당의 위치에서 온갖 기득권을 향유한 민주당 소속의 의장으로서 아무런 반성도 없이 대통령제와 선거법 ‘개헌’을 들고나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12일 민주당이 여당시절 입법을 밀어붙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률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첫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날 이종석 헌법재판관은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과 그가 국회 법제사법위 안건조정위원으로 선임된 데 대해 민주당 측에 “국회의원이 헌법을 위반해도 되냐”고 물었다.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에 대해 검찰이 수사할 수 없게 만든 이 법은 곧 국민의 구제받을 기회를 빼앗았다는 점에서 기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 오죽하면 민주당 중진 의원까지 “치사한 꼼수로 국회법과 민주주의를 유린했다”고 했겠나.

지난 정부의 실패를 말할 때 입법부인 국회가 행정부를 적절히 견제하고 균형을 잡아주지 못한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80석이라는 압도적인 지지에 도취한 나머지 책임과 균형 대신 오만과 독주로 일관한 것은 국민을 배신한 행위나 다름없다.

거대 여당은 21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의장단을 단독 선출하고 18개 국회 상임위를 독차지했다. 이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을 임명하고 국가정보원법 개정안과 대북전단금지법 등 쟁점 법안들도 밀어 붙었다. 여당은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종결할 의석인 180석을 채운 것에 환호하며 ‘국회선진화법’도 단숨에 무력화시켰다. ‘개헌’을 빼고 못 할 것이 없게 된 여당이 야당의 유일한 반대 수단마저 봉쇄해 버린 것이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떠나게 했다.

그러나 그보다 심각한 건 헌법을 부정한 데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마지막 3·1절 기념사에서 김대중 정부를 ‘첫 민주 정부’라고 했다. 이 말은 즉 그 뒤를 이은 노무현 정부가 2기, 자신이 3기 민주 정부라는 걸 의미한다. 헌법을 부정하고 국민을 ‘갈라치기’ 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면 심각한 역사 인식의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의 송재윤 교수는 신문 칼럼에서 “최초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를 통해 1948년 공식 수립된 이승만 정부가 1기 민주 정부”라고 정정한 바 있다.

지난 주일은 대한민국이 헌법을 제정 공포한 지 74주년이 되는 제헌절이었다. 1948년 7월 17일 제헌국회에서 헌법을 제정·공포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국회에 입법권을 부여하고 정부에는 행정권을, 법원에는 사법권을 부여한 3권분립은 제헌 헌법에서부터 지켜지고 있다. 그 목적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있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 최고 권력기관이다. 그러나 그 권력은 대통령이라는 지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국민이 위임한 것이다. 따라서 국민은 그 권력을 거둘 힘을 가진다. 이런 헌법 규정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정체성을 함축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오만과 독선을 지난해 4월 재보선과 올해 대선, 지방선거까지 연속해 국민이 심판한 것이 그 증거다.

그렇다면 ‘국민이 불러낸’ 윤석열 정부는 어떤가. 문 정부와 거대 여당의 독선에 등 돌린 유권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출범했는데 지지율이 30%대로 한 달 전과 비교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오르내리는 여론조사 상의 수치를 신경 쓰지 않더라도 왜 불과 두 달여 만에 이토록 민심 이반이 심각해졌는지 되돌아보고 잘못을 고치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글로벌 경제 한파에 고물가, 인플레이션, 고금리의 3중고에 코로나19 재유행의 빨간불까지 켜졌다. 그런데도 국회는 민생을 외면한 채 정쟁에 몰두하고 정부는 희망과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 피해와 고통이 국민에게 전가되는 현실에서 제헌절에 정치권이 던진 ‘개헌’ 화두가 국민 가슴에 와닿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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