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정신분석의 쇠퇴와 변신

민성길 교수
민성길 명예교수

현재 정신분석은, 과학적 내지 임상적(empirical) 증거부족으로 신경과학과 인지과학 등에 의해 의학의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즉, 정신분석이 과학이라고 주장되었지만, 과학 같지는 않다는 비판도 많이 받는다. 그 이유는 정신분석은 그 가설을 작동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데(operationalize), 또는 경험적 방법으로 검증하는 데, 또는 과학적 근거를 얻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상에서도 정신분석 치료를 하는 전문 분석가들도 줄어들고 있다.

소비자들 편에서도 정신분석은 오래 걸리고 치료비도 비싸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정신분석이 효과적이라는 증거를 찾았다고 말하는 연구자도 있다. 정신화를 주장하는 Peter Fonagy 같은 정신분석가는 고전적 정신분석이 과학적이라는 임상적 증거를 제시하고 못하고 있지만, 단기 정신치료가 효과적이라는 증거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의학에서 치료기술로서 정신분석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낮아져 왔다. 대신 정신분석에 기초하되 단기간의 “역동적” 정신치료가 개발되고 있다. 정신분석가 Aaron Beck는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를 개발하였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행동치료(behavior therapy)라는 정신치료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임상심리학자들이 정신분석에 근거하여 상담학을 발전시켰다. 인지치료와 행동치료를 통합한 인지행동치료(cognitive-behavioral treatment. CBT)가 개발되어, 정신과 의사들도 이 CBT를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정신과의사가 되기 위한 수련 중에는 아직 전통적 정신분석을 경험한다. 정신분석은 아직도 정신의학의 중요한 전통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1) 변화에의 시도

이제 정신분석가들 중에서, 정신분석이 살아남기 위해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보기 시작하였다. 그중 첫째는 정신분석에 근거하지만, 임상적 증거들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는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으로 발달하는 길이 있다. 둘째 발달하는 최첨단 신경과학(neuroscience)과 통합하는 신경정신분석(neuropsychoanalysis)으로의 발달이 있다. 즉 프로이트의 이론이 뇌영상으로 확인될 수 있으며, 꿈 현상도 뇌파상으로 나타나는 REM수면으로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즉 신경정신분석가는 신경과학의 발견이 정신분석이론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이제 초기 단계이다. 한편 전통주의자들은 프로이트의 포도주가 신경과학의 물로 희석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한편 신경과 학자들은 정신분석을 심리학으로 보고 인지과학으로 접근하기를 선호한다. 그러나 기억의 화학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콜럼비아대학 정신과의사 Eric Kandel은 정신분석이론을 생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에 동조적이다(그는 신경과학자가 되기 전에 정신분석가가 되려고 하였다). 한편으로는 정신분석은 전통적인 정신현상의 적절한 해석을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견해도 있다.

(2) 현대 사조와의 관계

초기부터 정신분석의 지적 세계는 인문학(humanities)과 비슷했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이 대화로 진행되며, 환자의 과거 경험이 현재의 노이로제 발생에 미친 영향을 밝히는 것이 역사연구와 비슷하며, 상징이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문예비평과 비슷하다. 이런 일은 요즘 말로는 나레이티브(이야기) 연구이며, 역사, 문학 그리고 비평과 매우 공통적이다. 즉 매우 인문학적이다. 프로이트도 초창기부터 정신분석 이론을 토템, 타부, 종교현상 등 문화인류학이나 예술과 문학 비평에 사용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분석은 hermeneutics(성경인 문학 텍스트의 해석에 대한 학문)의 방법과 유사하다. 즉 가설과 관찰에 대한 경험적 증명보다, 현상의 의미 있는 해석에 포커스를 둔다. 프로이트 이후 전형적 정신분석 논문은 예시와 더불어 추론(speculation)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문학이론(literary theory)과 비판(criticism)의 방법과 유사하다.

그리하여 현재는 정신분석연구소들은 그 수련과정이나 세미나에 정신과의사나 심리학자 이외 다른 인문학자들과 기타 다른 학파의 사람들에게도 문을 열어놓고 있다. 정신분석과 현대 인문학과의 관련성은, 빌헬름 라이히의 성혁명이론, 에리히 프롬과 마르쿠제 같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critical theory)과 신맑스주의(neo-marxism),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과 미셀 푸코의 철학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즉 거의 모든 현대 사상가들은 프로이트의 억압이론, 특히 성을 억압하여 노이로제가 생기므로, 정신분석을 통해 억압을 통찰하여야 한다는 것을 성의 억압에서 해방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확대 해석하였다.

프로이트를 계승하였다고 하는 프랑스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독특하고 난해한 그래서 논란이 많은 정신분석 이론을 말하고 있다. 그의 이론은 의학의 정신치료 분야보다, 인문학 전문가나 문학예술가들 또는 후기 구조주의적 지식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정신분석은 치료라는 본래의 의학에서 더욱 멀어져 있다. 이런 현대 사조들의 출발점으로서 정신분석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과 이드의 충동을 승화같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나아가도록 “이성적으로” 충고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즉 프로이트는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면 부인은 성욕을 참지 말고 맞바람을 피우라고 권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의 성혁명 사상이나 비판이론이나 푸코의 주장은 프로이트를 핑계로 모든 종류의 성적 욕망을 해방시키라는 것이다. 이런 현대 사조들은 반 이성적이며, 반 과학적이며 또한 당연히 반 기독교적이다. 거꾸로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현대 사회문화에 대한 이론이나 비판이론은, 스스로의 문제를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방어기제는 지능화(intellectualization), 또는 합리화(rationalization)라 한다. 그 사회적 문제란 개인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즉 인류의 욕망과 죄와 멸망의 문제이다. 기독교적으로 보면 인류의 문제는 그런 인간적인 통찰과 방어기제로 해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성혁명과 프리섹스 이론은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인류사회를 윤리적으로 타락시키고 정신장애와 신체질병을 만연케 함으로써 문명을 붕괴시킬 가능성을 높일 뿐이라 생각된다(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자동차 미세먼지도 현대 인간 이성의 산물이다).

민성길(연세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명예교수)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민성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