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서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각자 부르심의 모습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능력보다 먼저 그 마음을 보신다는 것이다. 이사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느 날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왜 하나님은 이사야를 부르셨을까?
1.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 사람
이사야 6장은 매우 인상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보게 된다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하나님의 보좌는 높이 들려 있었고,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외치고 있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장면 앞에서 이사야는 가장 먼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그는 자신의 죄와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는 누구도 자신을 자랑할 수 없다. 이사야는 이미 선지자로 불릴 만큼 신앙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는 자신 역시 부족한 죄인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모세도 그랬고, 베드로도 그랬으며, 바울도 그랬다.
하나님은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필자는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한 가지를 더 깊이 느낀다. 하나님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더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사야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2. 부족함을 깨달을 때 은혜가 보인다
이사야의 고백을 묵상하다 보면 필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도 돌아보게 된다.
필자는 한국에서 30대 중반에 안수집사로 세움을 받았고, 미국으로 이민 온 후에는 40대 중반에 장로 안수를 받고 시무장로로 섬기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맡게 된 셈이다.
그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직분을 잘 감당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도 있었고, 성도들을 섬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열심 속에 자신도 모르게 인간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기도하기보다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판단으로 문제를 풀어 보려고 한 적도 있었다. 직분을 맡았으니 스스로 나서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안에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지혜와 리더십을 더 의지하려 했던 부족한 모습도 있었다.
필자는 60대에 들어서면서 늦게나마 한 가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교회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교회 일은 사람의 지혜와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부족한 것이 많다. 그러나 예전보다는 무슨 일이 생길 때 먼저 기도하려고 한다. 서둘러 판단하기보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려고 한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직분을 통해 필자를 높이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보게 하셨던 것 같다. 그것이 은혜였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은혜의 자리로 들어가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사야가 “화로다 나여”라고 고백했던 그 순간도 절망의 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을 버리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런 사람을 정결하게 하시고, 다시 사명의 자리로 부르신다.
3.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이사야의 입술을 정결하게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이사야는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헌신의 고백 가운데 하나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사야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후에 비로소 이 고백을 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알게 된 후, 하나님의 은혜로 정결하게 되었기 때문에 응답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일은 자신감만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명감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 역시 장로의 직분을 감당하면서 그것을 조금씩 배워 왔다. 처음에는 자신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께서 하셔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자신이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앞서가시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교회 일은 사람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아니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사야의 고백이 더 깊이 마음에 다가온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 고백은 자신 있는 사람의 외침이 아니라, 은혜를 입은 사람의 응답이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순종하겠다는 고백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감당하겠다는 믿음의 대답이다.
4. 하나님은 겸손히 응답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후 평생 선지자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환영받기보다 거절당하는 일이 많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깊이 만난 사람은 환경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게 된다. 그래서 어려움이 와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필자는 나이가 들수록 한 가지를 더 분명히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겸손히 응답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능력이 많은 사람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신다.
이사야를 부르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부르고 계신다. 교회 안에서 부르실 수도 있고, 가정에서 부르실 수도 있으며, 직장과 삶의 자리에서 부르실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부르심의 크기가 아니다. 그 부르심 앞에 어떤 마음으로 서느냐이다.
돌이켜 보면 필자가 장로로 섬긴 세월도 스스로 잘해서 감당한 시간이 아니었다. 부족한 필자를 하나님께서 오래 참아 주셨고, 조금씩 다듬어 주셨고, 때마다 다시 기도의 자리로 이끌어 주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삶도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먼저 하나님께 묻고 싶다.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자신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 필자는 부족한 자신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것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 하나님은 왜 이사야를 부르셨는가?
• 하나님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엎드리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깊이 만날수록 사람은 자신을 자랑하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의지하게 된다.
•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일은 먼저 기도로 맡길 때 바르게 세워진다.
•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고백은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은혜를 입은 사람의 순종이다.
•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보다 부족함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겸손히 응답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이훈구 장로(G2G 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