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리처드 캔셔 박사의 기고글인 '신앙에 대한 의문, 기독교 청소년들이 믿음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신호일까?'(Is doubt a sign Christian teens are drifting?)를 10월 2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리처드 캔위셔 박사는 미국 애틀랜타 피치트리교회 담임목사로, 프린스턴신학교와 풀러신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가꾸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를 어떻게 맺으시는가』와 『나는 믿기에: 기독교 신앙은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등이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한 십 대가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고백은 학교에 들어서고, 스마트폰을 켜고, 친구들과 대화하며, 미래를 고민하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시험받는다.
청소년들은 인간관계와 정체성, 성공과 소속감에 관한 수많은 질문을 마주한다. 이들에게 신앙의 문제는 “나는 무엇을 믿는가”에 머물지 않는다. “이것을 믿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구체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바나그룹(Barna Group)의 새로운 연구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미국 청소년 1,500명을 조사하고, 영적 훈련과 봉사, 전도, 공동체 참여, 소명 등 여러 영역에서 기독교 신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이들을 ‘신앙 실천형 청소년’(Faith-Activated)으로 분류했다.
신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학생들은 믿음에 관한 혼란이나 불확실성을 덜 경험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더 복잡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 가운데 44%는 자신의 신앙과 친구나 문화가 요구하는 기대 사이에서 긴장을 느낀다고 답했다. 전체 청소년의 응답 비율인 27%보다 높았다. 또한 51%는 신앙이 일상과 연결되기보다 개인적인 영역에 머무는 것처럼 느낀다고 답했고, 43%는 하나님에 관해 믿는 내용을 실제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어려움을 겪는다고 응답했다.
기독교 신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청소년들이 오히려 그 믿음대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의문은 믿음이 자라는 과정일 수 있다
용서는 아름다운 가르침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을 때는 실천하기 어려운 과제가 된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고백도 그분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게 하는 시련 앞에서 무게가 달라진다. 이웃 사랑 역시 자신과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 구체적인 선택을 요구한다.
신앙이 현실의 저항과 마주하는 자리에서, 믿음의 고백은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제자도의 과제가 된다.
필자가 바나 연구진의 “의심이 곧 신앙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지적에 공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구진은 신앙 실천형 청소년들의 갈등을 단순한 이탈의 징후로 해석하지 않는다. 이들은 신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에 학교와 친구 관계, 문화 속에서 경험하는 현실에 비추어 자신이 믿는 바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질문과 긴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앙이 무너지고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배워온 신앙이 자신의 삶에 뿌리내리는 과정일 수도 있다.
정체성을 둘러싼 서로 다른 목소리
오늘날 청소년들은 진리와 정체성에 관한 서로 다른 관점 사이에서 살아간다. 하나는 진리를 자신 바깥에서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와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간다는 관점이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부르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에게서 출발한다. 인간이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기준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는다. 반면 현대 문화의 영향력 있는 메시지는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진리를 찾으라고 권한다.
전자가 정체성을 하나님께 받는 선물로 이해한다면, 후자는 자신이 만들어가야 할 과제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두 관점은 행복과 자유, 삶의 목적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이 고민하는 것은 단순히 종교를 가질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지, 무엇이 참된 자유인지를 설명하는 가운데 어떤 가르침을 따라 살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다.
이 지점에서 사도신경과 같은 기독교 신앙고백이 도움이 된다. “나는 믿는다”는 고백은 머릿속에 보관할 지식의 목록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에 관해 믿는 내용은 자신을 이해하고 삶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어져야 한다.
신앙은 “나는 이것을 믿는가”와 함께 다음 질문을 던진다: “이것이 진리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믿음은 공동체 안에서 삶이 된다
이 질문은 신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청소년 중 절반 이상이 믿음을 일상과 연결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를 돌아보게 한다. 교회는 신앙의 내용을 가르치는 데서 나아가, 그 믿음이 생활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함께 배워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고립된 개인이 혼자 간직하는 사적인 믿음에 머물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부르시고 빚어가시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후손을 약속하셨으며, 이스라엘을 한 백성으로 세우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으셨고, 오순절 성령의 강림을 통해 교회 공동체가 세워졌다. 신약성경이 신자들을 가족과 몸, 성전과 거룩한 백성으로 묘사하는 것도 이러한 공동체성을 보여준다.
청소년들은 이미 여러 공동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 친구와 학교, 운동팀과 소셜미디어는 무엇이 가치 있고 바람직한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가르친다. 이런 환경에서 기독교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청소년들이 혼자 믿음을 지켜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 신앙은 함께 살아갈 공동체를 제공한다. 오랜 세월 신실함을 지켜온 어른들, 서로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정, 믿음이 흔들릴 때 곁에서 붙들어주는 동역자가 필요하다. 청소년들은 그러한 관계 안에서 신앙이 삶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배운다.
바나의 연구에는 희망적인 결과도 있다. 교회 청소년부에 참석하는 신앙 실천형 청소년 중 72%는 자신의 청소년부가 신학과 성경을 깊이 생각하도록 도전한다는 데 강하게 동의했다. 같은 비율의 청소년들이 그곳에서 질문과 의심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교회가 청소년들의 질문을 받아들이고 함께 고민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교리를 믿으려고 더 노력하라는 요구만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이 실제 관계와 선택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경험하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정답을 전하는 데서 더 깊은 질문으로
서로 다른 신념 사이에서 느끼는 모순과 갈등은 신앙 성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그 갈등 속에 홀로 머물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교회는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 데서 나아가, 청소년들이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도록 도와야 한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무엇을 위해 창조됐는가. 참된 자유란 무엇인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줄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결국 다시 삶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것이 내가 믿는 진리라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목표는 아무런 질문이나 긴장도 느끼지 않는 청소년을 길러내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이 겪는 갈등을 이해하고,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도 하나님과 공동체를 의지해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돕는 데 있다.
교회가 믿음과 삶을 연결하는 길을 함께 찾지 않는다면, 다른 가치관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청소년들에게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가르치는 일과 함께, 그 믿음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동행하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누구도 혼자의 힘만으로 신앙의 모든 과제를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