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흔드는 ‘붉은색과 초록색의 연대’: 서구 문명을 위협하는 폭동의 경고

조슈아 아놀드 작가. ©washingtonstand.com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조슈아 아놀드 작가의 기고글인 ‘프랑스 폭동, 2020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시위보다 더 위험한 이유’(France riots: Why they’re more dangerous than BLM’s 2020)를 10월 22일 (현지시각) 게재했다.

조슈아 아놀드 작가는 워싱턴 스탠드의 선임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뉴스와 논평에 모두 기여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지난 주말 프랑스 전역에서 발생한 방화와 약탈, 경찰과의 충돌은 국가의 대응 능력과 사회 통합을 시험하고 있다. 학교 지원 부족에 항의하던 학생들의 시위는 생활비 상승과 공공서비스 악화에 대한 불만으로 확대됐다. 많은 시민이 평화적으로 참여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심각한 폭력과 파괴가 벌어졌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2020년 미국의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 당시 발생했던 소요 사태를 떠올린다. 그러나 프랑스의 정치적 환경과 급진 세력의 결합 가능성, 반복된 체제 변동의 역사를 고려하면 이번 사태는 또 다른 위험을 드러낸다. 미국 역시 이를 먼 나라의 문제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지난 주말 프랑스에서는 50만 명이 넘는 시민이 거리로 나왔다. 일부 참가자는 상점을 약탈하고 공공시설을 파괴했으며 경찰을 공격했다. 리모주의 유서 깊은 시청이 불탔고, 마르세유 시청과 리옹 관광안내소 등도 공격받았다. 보르도와 릴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경찰관과 소방관 약 600명이 다쳤고, 약 2,500명이 체포됐다. 피해가 커지자 당국은 일부 지역에 야간 통행 제한과 집회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학생들의 요구를 넘어선 정치적 충돌

시위는 9월 17일 학교 지원 부족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에서 시작됐다. 이후 규모가 커졌고, 10월 초에는 일부 현장에서 충돌이 발생해 경찰이 최루탄을 사용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3주년을 전후해서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된 구호와 상징도 등장했다. 파리 시청 벽면에는 하마스 관련 구호와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는 문구가 적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반유대주의 퇴치 운동(Combat Antisemitism Movement)의 유럽 담당 책임자 섀넌 세반은 국내 교육·사회 문제를 다루는 시위에 팔레스타인 국기가 등장한 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일부 참가자들의 행동을 정당한 요구의 표출이 아니라 경찰 공격과 공화국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평가했다.

교육 여건 개선과 생활비 부담 완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방화와 약탈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평화적인 집회 참가자와 폭력에 가담한 이들을 구분하고, 각각의 행동에 합당하게 대응해야 한다.

유대인 공동체의 불안도 커졌다. 일부 회당은 기도회를 취소했고, 유대인들에게 신분 노출과 외출에 주의하라는 권고가 전해졌다. 유대인 상점의 주소를 미리 확보한 약탈자들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개별 사건의 경위와 조직적인 표적화 여부는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시위 현장에서는 군사화 반대와 화석연료 중심 경제에 대한 비판, 제국주의 반대, 이스라엘과의 관계 단절 등 다양한 요구가 나왔다. 일부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했다. 교육 문제에서 시작된 항의가 광범위한 정치적 반발로 번진 것이다.

급진 세력의 결합에 대한 우려

필자는 여러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폭력의 규모와 양상을 볼 때 조직적인 조율 가능성을 조사해야 한다고 본다. 폭스뉴스는 여러 국가에 걸친 단체들이 유럽의 시위를 조직하고 확산시키는 데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제기되는 개념이 이른바 ‘적록 연대’다. 급진 좌파와 이슬람주의 세력이 서로 다른 목표를 지니면서도 특정 정치적 사안에서는 협력한다는 주장이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민주적 절차를 거부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폭력을 용인하는 세력들의 결합이다. 이를 무슬림이나 이민자 전체의 문제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폭력을 조직하고 선동한 주체와 그 행동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온라인 기획 문서에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 계정을 사전에 개설하려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만 시위를 미리 준비했다는 사실만으로 폭력까지 계획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합법적인 집회 준비와 범죄의 조직적 모의는 구분해야 한다.

당국은 폭력에 관여한 조직과 자금, 연락 체계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조직적 폭력에는 책임을 묻는 것이 민주국가의 역할이다.

대선을 앞둔 정치적 계산

《내셔널 리뷰》의 제프리 블레하르는 급진 좌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가 거리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장뤽 멜랑숑이 정부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마린 르펜에 맞설 세력을 결집하려 한다고 해석한다.

블레하르는 르펜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대규모 거리 시위가 뒤따를 가능성도 제기한다. 멜랑숑이 주장해 온 제6공화국 구상과 기존 체제에 대한 반발이 결합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는 향후 정치 상황과 멜랑숑의 의도에 관한 블레하르의 해석이다. 실제 위험을 판단하려면 정치인의 발언과 행동, 폭력에 대한 태도를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필자는 이번 사태에서 두 가지 위험에 주목한다. 서로 다른 급진 세력이 공통의 적을 중심으로 협력할 가능성과, 거리의 폭력이 정치적 불안과 결합해 제도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번질 가능성이다.

이러한 문제를 이해하려면 사회적 소외와 정치적 선동, 조직의 동원 능력, 정부에 대한 불신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살펴야 한다. 참가자의 출신이나 종교만으로 사태를 설명해서는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공화국의 안정성을 시험하는 폭력

프랑스는 1789년 혁명 이후 제정과 왕정복고, 여러 공화국과 전쟁, 점령을 거치며 정치 체제가 반복해서 바뀌었다. 현재의 체제는 제5공화국이다.

미국 역시 내전과 정치적 폭력, 심각한 사회 갈등을 겪었다. 어느 나라든 제도의 안정성을 당연하게 여길 수는 없다. 다만 필자는 미국의 제도적 연속성과 비교할 때, 프랑스에서는 거리의 대규모 동원이 정치 질서의 변동으로 이어졌던 역사에 주목한다.

과거의 경험만으로 오늘날의 소요가 체제 붕괴로 이어진다고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국적인 폭력이 지속되고 정부와 제도에 대한 신뢰까지 약해진다면 그 위험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정부에는 시민의 안전과 공공시설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동시에 평화적으로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요구를 듣고, 문제를 해결할 책임도 있다. 치안 회복과 정치적 해결이 함께 이루어져야 지속적인 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

정부의 대응과 공적 가치의 문제

마크롱 대통령은 대규모 시위를 앞둔 금요일 밤 셀린 디온의 콘서트에 참석해 비판받았다. 이후 대국민 연설에서 폭력을 규탄했지만, 정부가 위기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대응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은 이어졌다.

대선을 앞둔 정치적 부담과 재정적 제약도 정부의 대응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이 방화와 약탈, 시민에 대한 위협을 방치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내셔널 리뷰》의 노아 로스먼은 프랑스 정치권이 폭력 가담자의 책임을 묻기보다 자신들의 잘못을 찾는 데 지나치게 몰두한다고 비판했다. 사회적 원인을 성찰하는 일이 폭력의 책임을 흐리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필자는 여기서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자유와 권리, 공동체의 책임을 지탱하는 공적 가치는 무엇인가.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시민들이 함께 살아가려면 어떤 원칙을 공유해야 하는가.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간의 존엄과 이웃에 대한 책임, 권력의 한계는 중요한 토대다. 필자는 이러한 도덕적 기반을 소홀히 한 채 절차와 타협만으로 극단주의에 대응하려는 태도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사회가 어떤 가치와 책임을 공유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시민의 이동을 막고 공공재를 파괴하는 행동을 저항이라는 이유만으로 낭만화하는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 도로와 공공시설은 시민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자산이다. 파괴의 비용은 결국 지역 주민과 납세자에게 돌아간다.

폭력에 책임을 묻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사회적 긴장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프랑스 정부는 추가 피해를 막을 준비를 해야 한다. 폭력을 조직하거나 가담한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위협받는 공동체와 상인, 주민을 보호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도 합법적인 시위와 표현의 자유는 존중해야 한다.

필자가 미국에 던지고 싶은 경고도 여기에 있다. 정치적 명분을 내세워 폭력과 파괴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 일부의 폭력을 모든 시위자나 특정 종교·이민자 집단 전체의 책임으로 돌리는 태도 역시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

민주적 질서를 지키려면 폭력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시민들이 제도 안에서 요구를 전달하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프랑스는 지금 그 두 과제를 함께 감당할 수 있는지 시험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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