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리처드 랜드 박사의 기고글인 ‘그리스도인 부모 자녀를 하버드에 보내도 될까?’(Should Christian parents send their kids to Harvard?)를 8월 28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랜드 박사는 2013년 7월부터 2021년 7월까지 남부 복음주의 신학교(Southern Evangelical Seminary)의 총장으로 재직했으며 2011년부터 CP의 편집장 겸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최근 션 더피(Sean Duffy)와 폭스뉴스 진행자인 그의 아내 레이첼 캄포스-더피가 딸 팔로마의 하버드대학교 진학 여부를 두고 나눈 대화를 읽으면서 필자의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났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어느 대학에 진학할지를 놓고 부모님과 나누었던 비슷한 대화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더피 가족의 대화는 션 더피의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위대한 미국의 자동차 여행(The Great American Road Trip)’에서 나왔다. 팔로마는 자신이 하버드에 지원했으며 합격한다면 그곳에 진학하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선택일지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즉각 우려를 나타냈다. 자신들은 팔로마를 확고한 보수적 가톨릭 가치관 안에서 키웠는데, 하버드는 “너 같은 어린 여학생들을 어떻게 다룰지 철저히 알고 있는 곳”이라며 딸의 가치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더피는 딸이 반드시 자신의 신념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하버드가 균형 잡힌 교육을 제공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의 아내 역시 “가톨릭 신앙은 우리에게 전부”라며, 팔로마를 하버드에 보내는 것이 그 신앙의 토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에 팔로마는 다른 관점에서 답했다. 자신은 이미 매우 보수적인 고등학교를 다녔고 가족 역시 상당히 보수적인 만큼, 오히려 진보적인 환경에 들어가는 것이 보수적인 고등학교를 나온 뒤 다시 보수적인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보다 더 폭넓고 균형 잡힌 교육을 경험하는 길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하버드의 지적 환경에 대한 더피 부부의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 재단(FIRE)은 하버드대학교의 표현의 자유 환경을 낮게 평가해 왔으며, 대학 내에서 정치적·이념적 다양성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지를 둘러싼 논란도 계속돼 왔다.
이 가족의 대화를 접하면서 필자는 수십 년 전 어느 대학에 진학할지를 놓고 부모님을 비롯해 필자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여러 어른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휘튼인가, 프린스턴인가
필자는 1946년 말 텍사스주 휴스턴의 블루칼라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용접공이었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두 분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필자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격려해 주셨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세대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던 동네에서 성장한 필자에게 군대와 냉전의 존재감은 매우 컸다. 필자가 살던 지역의 거리 이름은 아르덴, 바스통, 칼레, 덩케르크, 아이젠하워, 포레스탈, 과달카날, 휘르트겐 숲, 이오지마 등 전쟁과 관련된 이름들로 채워져 있었다. 동네에서 아이들은 “너희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니?”라고 묻기보다 “너희 아버지는 어디에서 복무하셨니?”라고 물었다. 거의 모든 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세대였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층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고 당시에는 징병제도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 군에 입대하는 청년도 적지 않았다. 이런 환경의 영향 때문인지 필자는 10대 초반부터 웨스트포인트, 즉 미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해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품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 필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전임 기독교 사역, 곧 침례교 목회자로 부르고 계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필자를 또 다른 군대, ‘하나님의 군대’로 부르셨다고 느낀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필자는 대학 진학 계획을 완전히 수정했다. 가정 형편을 고려하면 일을 하며 돈을 모으고 텍사스대학교에 진학해 주내 거주자 학비 혜택을 받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부모님과 필자는 생각했다. 필자는 열 살 때 신문 배달을 시작한 이후 줄곧 일을 해왔기 때문에 학비 마련에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고등학교 3학년 때 SAT를 치른 뒤, 진학 상담교사였던 캐롤라인 아이비(Caroline Ivy) 선생님이 필자를 불러 어느 대학에 갈 계획인지 물었다. 필자가 “텍사스대학교에 갈 생각입니다”라고 답하자, 선생님은 “넌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필자는 속으로 ‘텍사스대학교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다는 말이지?’라고 생각했다.
아이비 선생님은 훨씬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며 여러 대학의 입학 안내서를 한 아름 건넸고, 충분히 검토하기 전까지는 상담실을 나가지 못하게 할 기세였다. 긴 상담 끝에 필자는 성격이 전혀 다른 두 학교, 일리노이주의 휘튼대학교(Wheaton College)와 뉴저지주의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에 지원하기로 했다.
두 학교의 학비와 기숙사비 모두 필자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하자, 선생님은 필자의 SAT 점수와 학교 성적을 고려하면 장학금을 받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안심시켰다. 실제로 얼마 뒤 두 대학 모두 학비를 사실상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재정 지원과 함께 합격 소식을 보내왔다.
그때부터 진짜 고민이 시작됐다.
‘영적 온실’과 ‘영적 냉동고’ 사이에서
더피 가족처럼 필자의 가족도 매우 독실한 기독교 가정이었다. 부모님과 남동생, 필자 모두 지역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남침례교인이었다. 아버지는 안수집사였고 부모님 두 분 모두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다. 우리 가족은 주일 오전과 저녁예배, 수요일 저녁예배까지 빠짐없이 참석했다. 필자가 회심하고 제자훈련을 받으며 신앙 안에서 성장했고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은 곳도 바로 그 교회였다.
더피 가족의 고민이 필자에게 특별히 익숙하게 다가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휘튼대학교와 프린스턴대학교 가운데 어디로 갈지를 놓고 필자 주변의 어른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치열한 의견 충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담임목사는 필자가 빌리 그레이엄의 모교로 잘 알려진 휘튼대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반면 아버지와 아이비 선생님, 고등학교 교장은 프린스턴대학교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논쟁의 핵심은 간단했다. 한쪽에서는 휘튼 같은 ‘영적 온실’에서만 성장하다가는 졸업한 뒤 세상의 차가운 겨울을 견뎌내기 어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쪽에서는 프린스턴과 같은 ‘영적 냉동고’에 들어갔다가 과연 신앙의 온기를 잃지 않고 나올 수 있겠느냐고 걱정했다.
필자는 한 달 동안 깊이 고민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재정 지원을 유지하려면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밤을 새워 기도한 끝에 필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프린스턴에 진학하기를 원하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만 필자의 가정과 더피 가족 사이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차이가 있었다. 부모님의 신앙은 매우 깊고 확고했지만 정치적 성향은 정반대였다. 보스턴 출신인 어머니는 공화당원이었고, 동텍사스 출신인 아버지는 민주당원이었다. 아버지는 9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단순히 훌륭한 대통령이 아니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국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겼다. 반대로 어머니는 주변 누구도 루스벨트에게 표를 던지지 않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두 분은 필자가 집을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거의 모든 선거에서 서로의 표를 정확하게 상쇄했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공화당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인정한 것은 1984년 로널드 레이건에게 표를 던졌을 때였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한 가정 안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가 공존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며 자란 셈이다.
프린스턴은 필자의 신앙을 무너뜨렸을까
그렇다면 프린스턴에 진학한 결정은 옳았을까. 필자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그곳에서 받은 교육은 매우 훌륭했다. 물론 정치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고, 필자가 믿고 있던 가치관은 끊임없이 도전을 받았다.
그러나 바로 그 과정 때문에 필자는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만이 아니라 ‘왜 그것을 믿는지’를 훨씬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됐다. 필자는 우등으로 졸업했고, 1969년 6월 14일 학교를 떠난 지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프린스턴에서 받은 교육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자주 떠올린다. 그곳에서의 교육은 이후 신학교에 진학하고, 나아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공부할 수 있는 지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렇다면 더피 부부는 딸 팔로마를 하버드에 보내야 할까? 아이비리그 출신인 필자는 종종 기독교인 부모들로부터 자녀를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내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더피 가족을 향한 필자의 대답 역시 그동안 다른 부모들에게 해왔던 대답과 같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녀의 성향에 달려 있다.
자녀가 또래 집단의 압력이나 시대의 지배적인 분위기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학교에 보내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다만 대학 안에서 신앙을 지탱해 줄 건강한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 멘토와 친구들을 찾을 수 있도록 부모가 가능한 한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버드 안의 가톨릭 공동체가 가톨릭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과 같은 신앙적 지원망은 특히 중요할 수 있다.
대학의 이름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자녀의 성향이다
필자에게는 두 딸과 아들 한 명, 모두 세 자녀가 있다. 한 명은 박사학위를 받았고 다른 두 명은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들이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주립대학교에서 보낸 2년을 제외하면, 세 자녀 모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뚜렷한 기독교적 정체성을 가진 학교에 다녔고 대학 역시 기독교 고등교육기관을 졸업했다. 세 자녀 모두 필자와 아내가 가정에서 전해준 신앙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필자 부부가 자녀들을 기독교 학교에 보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세 아이 모두 사람들과 어울리고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좋아했으며, 또래 집단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는 성향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분명한 소수자가 되는 사회적·교육적 환경을 불편해하는 편이기도 했다.
이 점은 때로 필자 부부를 애타게 했다. 필자와 아내는 오히려 자신들이 옳다고 확신한다면 주변에서 아무도 동의하지 않아도 크게 개의치 않는, 다소 반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보다 자신의 자녀를 더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질문은 단순히 “하버드는 좋은 학교인가, 나쁜 학교인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먼저 “우리 아이는 어떤 사람인가”를 물어야 한다.
자녀가 또래의 압력과 주변의 지배적인 가치관에 쉽게 휩쓸리는 편이라면, 필자는 매우 진보적이고 세속적인 대학에 보내는 일을 상당히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자신이 믿는 바를 스스로 생각하고 검토하며, 주변과 달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독립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면 그런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진지하게 고려해 볼 수 있다.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자녀를 모든 다른 생각으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아직 준비되지 않은 자녀를 아무런 신앙적·지적 지원 없이 거센 문화적 환경 속으로 밀어 넣는 것 역시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학교의 명성이나 정치적 성향만이 아니다. 자녀의 성격과 신앙의 성숙도, 지적인 독립성, 그리고 대학 생활 동안 그를 지탱해 줄 공동체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
필자 부부는 세 자녀가 모두 사역이나 기독교 교육 분야에 헌신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으며, 지역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필자의 가정에 베풀어 주신 은혜는 크다. 돌아보면 자녀들의 교육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완벽한 공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각각의 자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피고,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부모에게 “자녀를 하버드에 보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정답은 없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내 자녀는 그곳에서 다른 생각을 접하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스스로 고민하고 붙들 수 있을 만큼 준비되어 있는가.
학교를 선택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