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장 19–20절에서 바울은 죄의 종이었던 과거와 의의 종이 된 현재를 대비한다. 그는 당시 로마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주인과 종의 관계를 통해 죄와 의의 문제를 설명한다. 종은 주인에게 속하여 그 주인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다. 바울은 이 익숙한 모습을 통해 우리의 몸과 삶을 누구에게 내어주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바울은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라고 말한다. 죄와 의, 성화와 같은 깊은 영적 진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일상의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종이라는 표현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무엇이 지배하고 있으며 우리가 누구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과거에 우리는 우리의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어주었다. 부정은 더러움을 의미하고, 불법은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는 것을 의미한다. 죄는 인간을 더럽히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과 의의 질서를 깨뜨린다. 죄에 자신을 내어줄수록 인간은 더욱 깊은 불법으로 들어가고, 결국 죄가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죄는 처음부터 거대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욕망과 잘못된 선택을 반복해서 받아들이면서 점점 더 깊은 자리로 들어가게 된다. 한 번의 불법은 또 다른 불법으로 이어지고, 반복된 죄는 습관이 되어 사람을 붙잡는다. 그렇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죄에게 계속 내어주다 보면 어느 순간 죄가 주인이 되고 인간은 그 종처럼 살아가게 된다.
죄의 종이 된다는 것은 참된 자유를 잃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죄에 붙들리면 오히려 자신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행하고,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끊지 못한다. 양심은 괴로워하고 죄책감은 깊어지지만 스스로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것이 죄의 종 된 인간의 비참함이다.
바울은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다는 것은 좋은 의미의 자유가 아니다. 죄가 삶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와 상관없이 살아갔다는 뜻이다. 죄를 주인으로 섬기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을 지배하지 못했다.
그러나 바울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이제는”이라고 선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에는 분명한 전환이 일어났다. 죄의 지배 아래 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해방되었고 새로운 주인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에는 죄에게 자신을 내어주었다면 이제는 자신을 의에게 내어주어야 한다.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이것이 구원받은 자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방향이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죄를 짓지 않는 데서 멈추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몸과 삶을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드려 의를 이루어가는 사람이다. 죄에서 떠나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이 필요하다.
거룩함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우리의 지체를 의에게 내어드리는 삶을 통해 거룩함에 이른다고 말한다. 이것이 성화의 과정이다. 과거에 죄를 반복하면서 불법에 더욱 깊이 들어갔던 것처럼, 이제는 의로운 선택과 순종을 반복하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이 성화의 중요한 현장이다. 눈으로 무엇을 바라보는지, 귀로 무엇을 듣는지, 입으로 어떤 말을 하는지, 손과 발로 무엇을 행하는지가 중요하다. 과거에는 우리의 지체가 죄의 도구가 되었다면 이제는 같은 몸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입으로 사람을 살리고, 손으로 이웃을 섬기며, 발로 의와 화평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몸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몸의 주인을 바꾸는 것이다. 이전에는 죄가 우리의 몸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사랑과 의를 나타내시도록 우리의 모든 지체를 드리는 것이 거룩한 삶이다.
이것은 억지로 끌려가는 종의 삶이 아니다.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함으로 자신을 드리는 삶이다.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원하지 않아도 죄에 끌려갔지만, 의의 종이 된 사람은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기쁨으로 순종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종의 길은 속박의 길이 아니라 참된 자유와 생명의 길이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몸과 시간을 무엇에 내어주고 있는가. 과거에 죄에게 내어주었던 습관을 여전히 붙들고 있지는 않은가. 눈과 입, 손과 발이 죄를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도구가 되고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종이었던 과거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우리의 지체를 의에게 내어드리고, 날마다 작은 순종을 쌓아가며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죄에 자신을 내어주어 불법에 이르던 옛 삶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