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장 16–18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종’이라는 강한 표현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자신을 누구에게 내어주고 누구에게 순종하느냐에 따라 그 대상의 종이 된다. 죄에게 자신을 내어주면 죄의 종이 되고,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드리면 순종의 종이 되어 의에 이른다. 바울은 결국 우리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종은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바울은 앞서 우리의 몸을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어줄 것인지,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릴 것인지를 물었다. 이제 그 질문은 더욱 근본적인 자리로 들어간다. 우리는 누구의 소유로 살아갈 것인가. 죄의 종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바울 자신은 로마서의 첫 문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여기서 종은 단순히 일을 맡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에게 온전히 속한 존재를 뜻한다. 바울에게 신앙은 삶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과 시간, 사명과 미래까지 모두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고백이었다.
바울의 삶에는 실제로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고백했다. 복음을 전하면서 받은 수많은 박해와 고난의 상처를 그는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영광스러운 흔적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이라도 주님께 속한 자로 살아왔다는 것이 그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종은 억압당하는 종과 다르다. 죄의 종은 자유를 빼앗긴 종이다. 인간은 죄에게 붙들리면 원하지 않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스스로 멈추지 못한다. 육체의 욕망과 미움, 탐욕과 교만에 끌려가면서 점점 더 깊은 죄의 자리로 빠져든다. 죄는 자유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을 사망으로 끌고 간다.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라고 말한다. 그들의 과거는 죄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그들은 복음을 들었고,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믿음과 사랑의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인을 섬기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순종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강제로 만들어진 복종이 아니다. 복음 안에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그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랑을 알기에 주님께 속하기를 원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종이 되는 길이다. 세상의 종은 자유를 빼앗기지만, 그리스도의 종은 오히려 참된 자유를 얻는다. 죄에서 해방되고, 정죄에서 벗어나며,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하나님께 속할수록 인간다운 자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온전해진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서 비로소 인간은 본래의 자리를 찾기 때문이다.
바울은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삶의 주인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죄가 우리를 끌고 갔지만 이제는 의를 따라 살아간다. 사망으로 향하던 길에서 생명의 길로 옮겨졌고, 사탄의 지배에서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로 옮겨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자유가 아니다.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속하게 된 자유다. 우리는 자신의 뜻만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뜻을 기쁨으로 따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사랑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누구에게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주인이라 고백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욕망과 돈, 인정과 사람의 시선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반복해서 순종하는 대상이 결국 내 삶을 지배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게 자신을 다시 내어주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사람들이다. 우리를 죄악의 세계에서 건져내어 자신의 것으로 삼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마음으로 기꺼이 순종해야 한다. 삶의 모든 자리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소유다”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사랑의 종으로 주님만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