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신학은 암리 드 뤼바크(Henri de Lubac)나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 등이 주창한 '레소스망'(Ressou-rcement, 근원으로의 회귀)의 전통을 계승하여, 신학이 학술적 이론의 차원을 넘어 신비와 실천이 결합된 '심층적 구조'를 회복하게 한다. 즉, 회수신학은 교부 시대부터 이어져 온 신학적 지혜를 현재의 지평으로 회수(retrieval)함으로써, 개인의 가치관파 시대의 사상을 규정하는 하부 구조를 변혁할 수 있는 강력한 신학적 준거들(frame-work)을 제공한다. 결국 심층신학은 회수신학이라는 동로를 동해 기독교적 진리의 원형을 확보하며, 이를 동해 현대의 문화적 위기와 시대정신의 혼란을 타개할 수 있는 '존재론적 정체성'을 확빕한다.
탁영철, 탁신철 – 기독교 사상사
인생을 살아갈 때 인생길이 열리지 않아 고민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렵고 위험한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은 크리스천의 자세가 아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가 인생에 대해 스스로 깨닫는 이해도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 인도하심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한다.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모두 깨닫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섭리가 느껴지고 깨달아진다.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안에는 너무도 그 여정이 멀고 고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감옥에서 적응하고 인정받으면서 그곳에서도 일이 익숙해졌을 무렵 요셉에게는 또 한 번의 극심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준 후 자신의 구명을 위해 애써줄 것을 부탁했지만, 기약 없이 그저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자그마치 만 2년 동안이나 술 맡은 관원장은 어떤 좋은 소식도 알려오지 않았다. 또 한 번 요셉은 배신감과 상실감으로 치를 떨어야 했다. 그런데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답답하고 억울할 수 있으나 나중에 보상받을 수 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약속 후 만 2년이 지났을 때까지 여전히 감옥에 있었다. 애굽의 바로가 꿈을 꾸었을 때 그 감옥에 있었기에 그는 바로의 꿈을 해석할 수 있었다. 기다렸더니 보상을 받은 것이다.
원용일 – 인생은 요셉처럼
하나님이 고통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자유를 주셨고, 이는 자유로운 인간에게 거절당할 위험까지 감수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기꺼이 감수해야 할 아픔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에게 거절할 자유마저 허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라는 외로운 질문 앞에서, 이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당신의 깨어진 배 조각들을 붙들고 절망하는 대신, 그 모든 상황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십시오. 당신의 고통은 결코 저주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을 가장 깊은 은혜의 바다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진짜 믿음은 강인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믿음 없음을 정직하게 시인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싹틉니다. 우리의 초라한 현실을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내어놓는 고백은 어두운 밤을 지나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도가 됩니다.
이규호 – 고통도 하나님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