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영국 성공회가 발표한 공식 월드컵 기도문을 두고 교계 내부에서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고 7월 13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일부 사제들은 해당 기도문이 종교적 이해도가 낮고 신학적으로 깊이가 없다며 비판에 나선 반면 성공회 고위 주교는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가벼운 어조일 뿐이라며 이를 방어했다.
영국 일간 선데이타임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번 주 요크에서 열리는 성공회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총회를 앞두고 해당 기도문을 비판하는 서면 질의서가 다수 접수됐다. 영국 성공회 홍보팀은 국제축구연맹 월드컵 개막을 맞아 지난 6월 11일 소셜 미디어 채널에 22줄 분량의 기도문을 공개했다. 이 기도문은 영광의 하나님을 언급하며 시작되지만 기도문 전체에 걸쳐 예수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마라도나 연상 신의 손 표현 및 신학적 얕음 지적
CP는 가장 크게 논란이 된 부분은 신의 손이라는 표현이라고 밝혔다. 월드컵 기도문은 프리킥과 패스 그리고 선방 등에서 신의 손을 보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그러나 잉글랜드 축구 팬들에게 신의 손은 1986년 월드컵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손으로 공을 쳐서 득점했던 악명 높은 사건을 연상시키는 문구다.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기도문에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뼈아픈 반칙 패배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옥스퍼드 교구의 제레미 무디 신부는 서면 질의를 통해 온라인 독자들이 기도문의 종교적 무지함을 조롱하고 있으며 마라도나의 핸드볼 반칙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국 성공회 기도문 작성자가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인인지 그리고 어떠한 승인 절차를 거쳐 이 같은 내용이 배포되었는지 따져 물었다. 치체스터 교구의 평신도 총회 위원 브래들리 스미스 역시 월드컵 기도문에 예수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점이 의도적인 것인지 단순한 실수인지 해명을 요구하며 작성 및 승인 책임자 명단 공개를 촉구했다.
사제단 일각에서는 영적 가벼움에 대한 한탄도 이어졌다. 기독교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제이미 프랭클린 신부는 해당 기도문이 신학적으로 얕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가벼우며 영국 성공회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점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성공회 지도부 대중 소통 위한 맞춤형 콘텐츠 해명
CP는 교회 내부의 반발이 거세지자 성공회 전례위원회 위원장인 마이클 입그레이브 리치필드 주교가 직접 진화에 나섰다고 밝혔다. 입그레이브 주교는 소셜 미디어를 위해 작성된 월드컵 기도문은 공식 공공 예배를 위해 승인된 텍스트와는 형식과 어조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성공회 소셜 미디어에 공유되는 기도문은 신학 훈련을 받은 직원이 작성하며 철저한 내부 검토를 거치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월드컵과 같은 국가적 행사는 교회의 일반적인 신도들을 넘어 더 넓은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이며 이를 위해 비공식적이고 대중적인 어조를 채택했다고 덧붙였다. 홍보팀이 대중과의 소통과 전도를 돕기 위해 다양한 플랫폼과 대상에 맞춘 콘텐츠를 유연하게 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예수의 이름이 누락된 것에 대해서도 입그레이브 주교는 해당 텍스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끝나는 전통적인 짧은 본기도 형식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대중성 확보를 위해 종교적 본질을 훼손했다는 영국 성공회 내부의 비판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