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그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니

목회·신학
[좋은성경구절]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로마서 5장 9–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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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장 9–10절에서 바울은 구원의 깊은 은혜를 다시 선포한다. 그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예수의 피는 단순한 희생의 상징이 아니다. 그 피는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모든 죄악과 어둠을 이기는 사랑의 능력이다.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죄의 문제를 그리스도의 피가 해결했다.

구원은 조금씩 나아지는 도덕적 개선이 아니다.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자가 건짐을 받는 사건이다. 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 끌어올려지는 것처럼,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 생명을 얻는 것처럼, 구원은 단번에 우리 운명이 바뀌는 은혜다. 우리는 죄와 사망 아래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바울은 이어서 우리가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창조주를 거역하며, 자기 뜻대로 살아가던 인간은 하나님의 원수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죄가 쌓이고 쌓여 심판과 멸망밖에 남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여셨다. 그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였다.

10절에서 바울은 더 놀라운 사실을 말한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던 자가 아니었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던 자도 아니었다. 하나님을 떠나고 대적하던 자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 원수 되었을 때 우리를 친구로 삼으셨고, 아들의 죽으심으로 화해의 길을 여셨다.

화목은 죄의 담이 무너지고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깊은 단절이 있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없었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두려움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그 담이 허물어졌다. 하나님의 아들이 속죄양이 되어 자신을 내어주셨고, 그 희생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졌다.

이 화목은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해를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화해의 길을 내셨다.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오셨다.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미 사랑으로 우리를 향해 움직이고 계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바울은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그의 살아나심으로 우리는 생명의 구원을 누리게 되었다. 십자가가 죄와 진노의 문제를 해결했다면, 부활은 그 구원의 생명과 능력을 확증한다. 주께서 살아나셨기에, 우리도 그 생명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진정 믿고 있는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나를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화목하게 하셨다는 은혜를 깊이 붙들고 있는가. 구원은 나의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피로 말미암은 것이다. 화목은 나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아들의 죽으심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로 살아야 한다.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이미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그의 살아나심으로 구원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다. 예수의 피는 우리를 진노에서 건지고, 예수의 죽으심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예수의 부활은 우리를 참 생명으로 이끈다. 이것이 우리가 붙들어야 할 복음의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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