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상선 3척이 잇따라 공격을 받으면서 중동 정세가 다시 긴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은 이번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고 호르무즈 해협 주변 군사시설을 공습한 데 이어, 이란산 원유 판매에 대한 제재 완화 조치도 철회했다.
이번 사태로 국제 유가는 상승세를 보였고, 지난달 미국과 이란이 합의한 휴전과 핵협상도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운송의 핵심 통로인 만큼, 상선 공격이 에너지 공급망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 이란 겨냥한 대규모 공습 단행
미국 중부사령부는 7일(현지시간) X를 통해 “이란이 국제 수로에서 민간인이 탑승한 상업 선박을 표적으로 공격한 데 대응해 강력한 타격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중부사령부는 이번 공격을 “위험한 행위이자 휴전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은 군사 대응과 함께 대이란 제재도 다시 강화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22일부터 60일간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이란산 원유 판매 제재 면제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미 승인된 거래에 대해서는 오는 17일까지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이번 공습이 지난달 휴전 이후 진행된 다른 공격보다 4~5배 큰 규모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해당 관계자는 이번 작전이 이란에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은 이번 군사 대응에도 불구하고 휴전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측은 최종 핵 합의를 위한 협상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와 비공식 소통 채널을 구축하려 했지만, 혁명수비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방공망·미사일 기지 등 호르무즈 주변 시설 타격
미국 당국에 따르면 미군은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주요 군사시설을 집중 타격했다. 공격 대상에는 시리크, 케슘, 반다르아바스 일대의 방공망과 해안 감시시설, 지대공 미사일 및 대함 순항미사일 기지, 드론 발사기지, 항만시설 등이 포함됐다.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 요충지로 꼽히는 아부무사섬과 툼브 제도도 타격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공습은 전날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유조선 등 상선 3척이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은 데 따른 보복 조치였다.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에 따르면 공격을 받은 선박 가운데 하나는 카타르 소속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알 레카얏’호였다. 이 선박은 당시 오만 연안 해역을 운항 중이었다.
영국 해상무역작전국은 오만 연안에서 한 선박이 미확인 발사체에 맞아 화재가 발생했고, 두 번째 유조선은 발사체 공격으로 선체가 손상됐다고 밝혔다. 세 번째 선박은 드론 공격으로 경미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관리들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대함 순항미사일과 자폭 드론을 동원해 오만 측 항로를 이용하던 선박들을 공격했다고 설명했다. 미군은 이 과정에서 일부 드론을 격추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당국은 세 차례 공격 모두 인명 피해나 환경오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란 책임 부인 속 핵협상도 불투명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번 상선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며 국제 해상 항행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반면 이란은 공격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사건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란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의 조치에 반발했다. 외무부는 “이란은 미국의 조항 위반에 따른 결과를 엄중히 경고한다”며 “국익과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특히 미국의 석유 수출 제재 복원이 기존 양해각서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무부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이란에서는 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장례 절차가 진행 중이며, 미국과 이란 간 핵협상도 장례가 끝날 때까지 중단된 상태다. 이번 상선 공격과 미국의 공습은 지난 6월 양측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교전 중단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가장 심각한 긴장 고조 사례로 평가된다.
당시 미국과 이란은 미국이 이란 항만 봉쇄를 완화하고 제한적으로 원유 판매를 허용하는 대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통항을 보장하고 핵 프로그램을 현 상태로 유지하는 데 합의했다. 미국은 이를 토대로 60일간 외교 협상을 이어가며 최종 핵 합의를 추진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공격 이후 미국이 제재 완화 조치를 철회하면서 이란이 확보했던 주요 경제적 유인도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관리들이 하메네이 장례와 협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란이 상선을 공격한 데 대해 예상보다 훨씬 강경한 행동이었다며 놀라움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호르무즈 해협 위험도 상승에 유가도 반응
국제 해운업계도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해양정보업체 케이플러는 이번 사건을 미국과 이란의 휴전 이후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가장 중대한 안보 사건으로 평가했다. 케이플러는 지역 안정성과 해상 무역, 글로벌 액화천연가스 공급망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합동해상정보센터는 호르무즈 해협의 위험도를 ‘상당함’에서 ‘심각함’으로 상향 조정했다. 센터는 추가 공격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해양정보업체 윈드워드의 아미 다니엘 최고경영자는 이란이 선박들을 자국 해역에 더 가까이 항해하도록 유도한 뒤 통행료를 부과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선박들을 이란 해협 가까이 유도한 뒤 통행료를 부과하려는 치밀한 전략일 수 있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20%가 지나는 핵심 해상 통로다. 휴전 이후 통항량은 하루 30~60척 수준까지 회복됐지만, 이번 공격으로 다시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쟁 이전에는 하루 100척 이상이 이 해협을 통과했다.
국제 유가도 즉각 반응했다. 브렌트유는 7일 종가 기준 배럴당 74.16달러로 약 3% 상승했다. 이후 미국이 이란산 원유 제재 면제 철회를 발표하면서 한때 배럴당 76달러에 근접했다.
호르무즈 해협 상선 공격과 미국의 이란 공습이 맞물리면서 중동 위기는 다시 확산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은 휴전과 핵협상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란에 대한 군사 압박과 제재 강화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향후 협상 동력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