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국가 언약, 성경 권위와 장로교 신앙의 역사적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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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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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학술원 제119회 월례학술포럼서 언약도 운동의 의미 발표
기독교학술원 제119회 월례학술포럼이 19일 오후 온누리교회 횃불회관 화평홀에서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과 언약도 신앙’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기독교학술원 제공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은 19일 오후 서울 양재 온누리교회 횃불회관 화평홀에서 제119회 월례학술포럼을 열고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과 언약도 신앙’을 주제로 발표회와 기도회를 진행했다.

이번 포럼은 17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 역사 속에서 형성된 국가 언약과 언약도 신앙의 의미를 살피고, 성경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왕권, 장로교 신앙 전통의 역사적 유산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포럼은 경건회와 발표회 순으로 진행됐다. 경건회는 김영한 기독교학술원 원장의 인도로 시작됐으며, 참석자들은 국가와 한국교회, 북한구원, 전쟁 종식과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이어 정기철 목사(전 여수성광교회 담임, 전 호남신대 교수)가 ‘말씀과 성령의 삶’을 제목으로 설교했다. 정 목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성경의 권위와 성령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며,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이 성경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고난과 박해를 감당했다고 강조했다.

정 목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의 성경론을 언급하며, 성경의 권위는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에 기대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온다고 설명했다. 또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역사하심으로 신자들이 성경의 권위를 확신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언약도들이 맞섰던 핵심 쟁점을 왕이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한 문제, 왕이 예배 형식을 정하려 한 문제, 주교들이 교회를 다스릴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한 문제로 설명했다. 정 목사는 언약도들에게 성경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왕권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신앙 고백이었다고 밝혔다.

설교는 열왕기상 17장에 나타난 사르밧 과부 이야기로 이어졌다. 정 목사는 엘리야를 기도의 사람, 말씀의 사람, 성령의 사람으로 설명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역사 속에서 한 사람의 삶 가운데 실제 사건으로 나타난다고 전했다.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 장로교 신앙의 역사적 유산

발표회는 김영한 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김 원장은 개회사에서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이 1638년 체결된 이후 장로교 신앙과 교회 정치의 정체성을 지키는 중요한 토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이 찰스 1세와 윌리엄 로드 대주교가 스코틀랜드 교회를 영국의 예배 형식과 교회 정치에 따르게 하려 한 데 대한 저항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 언약이 왕의 절대 권력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라는 신앙을 고백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뿌리를 존 낙스와 앤드류 멜빌에게서 찾았다.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을 이끌며 성경만이 교회의 유일한 규범임을 주장했고, 앤드류 멜빌은 감독제에 반대하며 장로회주의의 기초를 놓은 인물로 소개됐다.

김 원장은 언약도 신앙의 특징으로 성경 중심 신앙, 언약 개념, 장로교 정치, 시민적 자유, 평화 지향성을 제시했다. 그는 언약도들이 성경을 직접 읽고 묵상하며 성경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언약도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단순한 인간 간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약속으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언약 이해가 개인의 신앙뿐 아니라 국가와 교회의 정체성을 세우는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

최성대 목사(기독교학술원 수사, 미국 달라스신학대 Th.M, D.Min 수료)가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과 언약도 신앙’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했다. ©기독교학술원 제공

최성대 목사, 국가 언약과 언약도 신앙 발표

주제 발표는 최성대 목사(기독교학술원 수사, 미국 달라스신학대 Th.M, D.Min 수료)가 맡아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과 언약도 신앙’을 발표했다.

최 목사는 발표 서두에서 요한계시록 2장 10절 말씀을 제시하며, 언약도 신앙을 고난과 충성, 순교의 역사 속에서 조명했다. 그는 터툴리안의 순교자 관련 언급과 조선 말 천주교 박해 사례를 소개하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감수했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의 신앙을 살폈다.

그는 발표가 2025년 11월 25일부터 12월 11일까지 진행한 영국·아일랜드 비전트립에서 경험한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의 신앙적 유산을 바탕으로 작성됐다고 밝혔다. 최 목사는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과 언약도들의 신앙을 서명과 순교의 현장을 중심으로 추적하며, 장로교 전통의 역사적 뿌리를 설명했다.

최 목사는 1638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그레이프라이어스 교회에서 국가 언약이 처음 서명됐고, 이후 자치도시와 교구 교회들로 확산됐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 언약이 찰스 1세의 종교·정치 정책과 로마가톨릭에 반대해 스코틀랜드인들이 함께 결속한 문서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국가 언약’이라는 표현이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개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약도들에게 국가 언약은 단순한 정치 문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신앙과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고백이었다는 것이다.

최 목사는 1643년 체결된 ‘엄숙동맹과 언약’도 함께 다뤘다. 그는 엄숙동맹과 언약이 스코틀랜드 언약도들과 잉글랜드 의회 사이에 맺어진 조약으로, 잉글랜드가 장로교를 채택하도록 호소하는 성격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이 문서는 잉글랜드 내전 상황 속에서 언약도들과 크롬웰의 의회군이 일정 기간 동맹을 맺는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언약도 박해와 장로교 수립 과정 조명

최 목사는 1661년부터 1688년까지 약 27년 동안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이 대대적인 박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시기 언약도 약 1만 8천 명이 순교할 정도로 큰 고난을 겪었다고 밝히며, 이들이 왜 박해를 받았고 그 박해 속에서 어떤 형태의 장로교 신앙을 세웠는지를 살피는 일이 오늘날 장로교와 개혁교회 전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수립 과정을 1560년 종교개혁부터 1690년 장로교 체제 확립까지 이어진 긴 투쟁의 역사로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스코틀랜드 교회는 가톨릭과 성공회, 왕권 중심의 교회 통제와 맞서며 장로교 체제를 세워갔다고 밝혔다.

최 목사는 이 투쟁의 핵심 쟁점이 교회의 머리가 누구인가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왕이 교회의 머리인지, 아니면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인지가 스코틀랜드 장로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적·교회 정치적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는 1690년 이후 스코틀랜드 교회가 장로교 국교회로 자리 잡으면서 국왕이 아니라 장로교 총회가 교회 조직의 최상층부에 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교회의 통치가 국가 권력에 종속되지 않고 장로교회의 최고 재판·의결기구인 총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최 목사는 그러나 1690년 이후에도 스코틀랜드 교회가 새로운 갈등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목사 선출 문제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으며, 1712년 영국 정부가 성직후원제도를 다시 도입하면서 지주계급에게 교구 목사를 지명할 권한을 부여한 일이 장로교도들의 반발을 불러왔다고 밝혔다.

그는 장로교도들이 성직후원제도를 목사를 직접 선출할 수 있는 교회의 권리를 무시한 조치로 보았다고 설명했다. 또 지주세력과 결탁한 부패한 목회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교회 분열과 탈퇴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최 목사는 언약도 운동이 단순한 종교 갈등이나 정치적 저항에 머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약도 운동이 양심의 자유, 교회의 영적 독립성, 대의제 발전, 장로교 표준 문서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예배모범, 요리문답, 장로교 정치 형태가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언약도 신앙은 장로교회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예배하며, 어떻게 교회를 다스려야 하는지를 정리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최 목사는 언약도들의 상징을 “불타나 사라지지 않는 떨기나무”로 설명했다. 그는 1638년 국가 언약 서명 이후 1688년 명예혁명으로 장로교주의가 회복되기까지 수많은 언약도들이 순교와 추방, 처형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17세기 스코틀랜드 언약도 운동이 오늘날 세속주의, 인본주의, 물질주의, 종교다원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경건한 삶과 신행일치의 삶을 요청하는 역사적 사례가 된다고 설명했다.

논평 “한국 장로교 전통 이해에도 중요한 주제”

논평에 나선 이은선 안양대 명예교수는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과 언약도 신앙에 대한 연구가 한국 장로교 전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가 잉글랜드 청교도 전통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지만, 한국 장로교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 언약도 운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연구와 관심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과 언약도에 대한 연구가 이미 상당히 축적돼 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언약사상과 언약운동을 다룬 연구들을 언급하며, 최성대 목사의 발표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과 언약도 신앙을 다시 조명하는 의미를 가진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최 목사의 발표가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과 언약도들의 신앙을 서명과 순교의 현장을 중심으로 추적했다는 점을 짚었다. 또 발표가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을 단지 종교개혁의 산물로만 보지 않고, 스코틀랜드 역사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교수는 관련 연구와 역사적 배경을 보다 정교하게 다루고, 기존 연구와의 차별성을 분명히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를 통해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과 언약도 신앙 연구가 한국교회와 장로교 전통 이해 안에서 더 깊이 논의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성경 권위와 그리스도의 왕권을 다시 묻다

이날 포럼에서는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이 성경의 권위와 교회의 영적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국가 권력과 맞섰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강조됐다. 발표자들은 언약도 신앙이 오늘날에도 성경 중심 신앙과 그리스도의 왕권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역사적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포럼은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과 언약도 신앙을 단순한 과거의 역사로 다루지 않고, 오늘의 교회가 어떤 권위 위에 서야 하는지를 묻는 신학적 주제로 제시했다. 특히 성경의 권위, 말씀과 성령의 역사,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라는 고백이 포럼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로 다뤄졌다.

이날 발표회는 토론과 종합 순서로 이어졌다. 토론 이후 김영한 원장이 종합을 맡았으며, 박봉규 목사 기독교학술원 사무총장이 광고를 전했다. 포럼은 정기철 목사의 축도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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