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조나단 펠드스타인의 기고글인 ‘이스라엘에서 휴전과 휴전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불안한 현실’(The unnerving reality of life between ceasefires in Israel)를 5월 1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조나단 펠드스타인은 Genesis 123 Foundation과 RunforZion.com 의 사장 겸 CEO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최근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났다. 요즘 이스라엘에서는 단 다섯 층을 이동하는 짧은 시간 안에도 서로의 몸짓과 말투만으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하는 일종의 암묵적인 약속이 존재한다. 가족과 일상, 그리고 휴전과 휴전 사이를 오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가 말했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의 이 고요함을 감사히 누리세요."
그 메시지는 명확하고도 뼈아팠다. 지난 78년간 이스라엘은 늘 한쪽 혹은 또 다른 적들로부터 공격을 받아왔다. 오늘날 그들 중 상당수는 장거리 로켓과 미사일, 드론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비행체가 감지되는 순간 수백만 명의 시민은 찰나의 순간에 방공호로 몸을 숨겨야 한다. 최근 이란과 헤즈볼라로부터 40일간 이어진 공격을 견뎌낸 이들에게, 지금의 휴전은 절실하면서도 동시에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지금의 고요를 즐기라"는 말은 지혜로운 조언이다. 이 평온이 언제든, 당장이라도 끝날 수 있다는 거대한 현실을 인간이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를 뿐이다.
필자는 최근 몇 주간 만난 사람들 중 '고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평화'는 여전히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다. 수년 전, 필자가 지극히 세속적인 친척에게 "평화로운 새해를 보내라"고 덕담을 건넸을 때, 그녀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두고 기도하지 말자"고 답했다. 이번 달, 헤즈볼라의 위협이 여전한 이스라엘 북부에 사는 또 다른 친척과 연락이 닿았다. 필자는 그녀의 안위가 걱정되어 물었으나, 그녀는 이미 이런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는 필자에게 "정말 우리 이웃들과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니? 난 믿지 않아"라고 되물었다.
이웃의 말대로, "정말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그 잡기 힘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를 평화를 갈망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고요함' 정도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테러리스트들을 뒤로 밀어내거나 문제를 뒤로 미루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진정한 승리로 이 상황을 매듭지어야 한다. 그래야 필자의 손주들이 군대에 가고 부모와 조부모가 되었을 때, 똑같은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스스로 느끼는 이 감정들이 유독 개인적인 것인지, 아니면 우리 민족의 정서와 DNA에 각인된 것인지 궁금해 친구들에게 휴전 사이를 살아가는 심경을 물었다.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운 격한 반응도 있었지만, 모두가 통찰력 있는 답변을 주었다.
한 친구는 휴전기의 삶을 '예기불안(anticipation anxiety)'이라고 표현했다. 새로운 직장 같은 예정된 사건이나 사랑하는 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잠재적 위협, 혹은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전쟁'이라는 미래의 사건을 앞두고 겪는 걱정이다.
이 불안은 일상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비즈니스 회의가 취소되거나, 운항 항공사가 적어 출국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식이다. 해외로 나간다 해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가 더 큰 걱정이다. 다음 주 비행 일정이 있는 한 친구는 필자에게 "거기 갇혀버리면 감당이 안 돼. 취소하는 게 맞을까?"라고 묻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조금 더 심각한 것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아예 '마마드(Mamad, 가정용 방공호)'에서 재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새벽 3시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자는 아이들을 들쳐 업고 방공호로 뛰어가지 않아도 되니 부모 입장에선 차라리 편하다. 아이들 역시 그곳에서 자는 것을 오히려 안심하지만, 이는 피할 수 없이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길 것이며 성인이 된 후에도 불안으로 나타날 것이다.
최근 한 친구는 남편과 함께 방공호에서 나와 다시 자신들의 침대로 돌아갔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필자는 속으로 '다음 교전이 시작되기 딱 맞춰 돌아갔군'이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녀는 성찰 섞인 목소리로 "해외에서 친척들이 와야 하는 성인식(Bar-mitzvah)이나 결혼식을 준비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우리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덧붙였다.
축하 행사를 위한 여행은 극도의 스트레스다. 하루하루 상황이 급변하여 하객들이 제때 도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주 결혼식을 올리는 필자의 이웃집은 양가 친지들이 대거 입국 중이다. 하객들이 못 오는 것도 걱정이지만, 비상시에는 행사장 인원이 50명으로 제한되거나 아예 취소될 수도 있다. 필자는 만약을 대비해 예루살렘의 아름다운 전경이 보이는 집 발코니를 예식 장소로 빌려주겠다고 제안해 두었다.
현실적인 문제는 유대인의 결혼 계약서인 '케투바(Ketubah)'에서도 나타난다. 계약서에는 예식 장소를 명시해야 하는데, 많은 이들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장소 기입을 마지막까지 미뤄둔다. 실제 예식이 치러지지 않은 장소를 법적 문서에 기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처럼 공들여 제작하는 케투바를 예식 전까지 완성해야 하는 이들에게 이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다.
모든 소음이 '트리거'가 된다. 며칠 전 필자의 집 상공에서 평소와 다른 드론 소리가 한참 동안 들렸고, 어제는 20~30분간 전투기의 굉음이 이어졌다. 창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조차 폭발음처럼 들려 가슴이 철렁한다.
전투기 소리에 맞춰 필자의 심장 박동수도 빨라졌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촉각을 굴두세우며, 필자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수학 문제'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스라엘의 전투기 편대가 목표물을 향해 이륙했다면, 보복 공격이 시작되기까지 내게는 커피를 마시거나 샤워를 하고 식료품점에 다녀올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차라리 전투기가 어디로 가는지, 방금 들린 그 굉음의 결과가 무엇인지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앱이라도 있다면 마음이 좀 편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필자가 다른 친구인 스테이시에게 휴전 사이의 삶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물었을 때, 그녀의 대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 자신의 미래뿐만 아니라 평화를 원하는 이란과 레바논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피와 재산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워."
이는 필자가 자주 듣는 정서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테러리스트의 압제로부터 우리 자신은 물론, 이란과 레바논 사람들도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위협과 손실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것이 핵심 메시지일지 모른다. 우리를 전멸시키고 싶어 하는 적들과 달리, 우리는 이 모든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