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웬디 유르고의 기고글인 ‘2천 년 이어진 시리아 기독교의 뿌리는 어떻게 뽑혀가고 있는가'(How Syria’s 2,000-year-old Christian roots are being torn out)를 5월 7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웬디 유르고는 기독교 보수 성향의 핀테크 기업 리비어 페이먼츠(Revere Payments)의 창립자이자 CEO로, 미국 내 주요 신앙 기반 및 자유 가치를 지향하는 단체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신앙과 자유, 그리고 가정의 회복과 강화를 주제로 글을 쓰고 강연하는 작가이자 연사이기도 하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올해 부활절, 시리아 기독교인들은 거리로 나가지 못했다.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종려 행렬도, 오래된 골목을 지나며 찬양하던 행진도 없었다. 2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신앙의 흔적은 침묵 속에 갇혀 있었다.
대신 지난 3월 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은 오토바이를 타고 시리아의 대표적인 기독교 도시 수카일라비야로 들이닥쳤다. 총격을 가하고 차량과 상점을 파괴했으며, 주민들은 문을 걸어 잠근 채 공포 속에 숨어 있어야 했다.
결국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회 총대주교들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올해 부활절 행사는 “교회 내부에서 드리는 기도”로만 제한되었다. 필자는 이를 두고 “전례력 위에 드리워진 패배의 모습”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1년 전, 필자는 자신의 가족이 뿌리를 두고 있는 시리아가 고대 기독교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물론 이는 오랜 세월 시리아를 황폐화시킨 아사드 정권의 잔혹함을 면죄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재 정권의 붕괴가 시리아 기독교인들에게 자유와 다원주의를 가져다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지역에서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공포와 위협, 종파적 폭력,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공동체 중 일부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현실이었다.
통계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14개월이 지난 지금, 숫자는 많은 서방 정치권이 외면했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 기독교 박해 감시단체인 ‘오픈도어(Open Doors)’의 세계 박해 지수에서 시리아는 단 1년 만에 18위에서 6위로 급등했다. 이는 해당 보고서 역사상 가장 큰 폭의 상승이었다.
기독교인에 대한 폭력 점수는 16.7점 만점 중 16.1점까지 치솟았다. 전체 박해 점수 역시 100점 만점 중 90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고, ‘극심한 박해’ 국가로 분류됐다.
이전 조사 기간에는 신앙 때문에 살해된 시리아 기독교인이 공식적으로 한 명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2026년 보고서에서는 최소 27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기록됐다. 연구진은 실제 숫자는 훨씬 많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기독교 인구 자체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현재 시리아에 남아 있는 기독교인은 약 30만 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는 내전이 시작된 2011년 이전 150만~200만 명 규모에서 크게 감소한 수치다. 당시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약 10%를 차지했다. 이제 기독교 공동체의 소멸은 더 이상 가정이나 예측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교회들이 실제로 불타고 있다
이는 비유가 아니다. 2024년 12월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시리아 내 기독교 공동체를 겨냥한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2024년 성탄절에는 외국인 무장세력이 성탄 트리를 불태웠다. 2025년 2월에는 홈스 지역 기독교 묘지의 십자가가 파괴됐다. 4월에는 다마스쿠스의 한 교회가 방화 공격을 당할 뻔했고, 5월에는 하마 지역의 기독교인 가족 차량이 불에 탔다. 현장에는 협박 전단까지 남겨졌다. 6월에는 홈스의 한 교회가 총격을 받았다.
그리고 결국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공격이 벌어졌다. 2025년 6월 22일, 안디옥 모든 성인 축일 예배가 드려지던 다마스쿠스의 마르 엘리아스 그리스정교회에 자살폭탄 테러범이 침입했다.
당시 약 350명이 예배 중이었다. 공격자는 총격을 가하고 수류탄을 던진 뒤 폭탄 조끼를 터뜨렸다. 최소 25명이 숨지고 63명이 다쳤다. 희생자 중에는 어린아이들과 영아도 포함돼 있었다.
안디옥 그리스정교 총대주교청은 이를 “사악한 배신의 손길”이라고 규정했다. 폭발 이후 현장은 수 시간 동안 혼란과 공포에 휩싸였다. 구급차가 끊임없이 오갔고, 구조대원들은 잔해 속에서 희생자들의 유해를 수습해야 했다.
불과 3주 뒤에는 스웨이다 지역의 성 미카엘 멜카이트 교회가 방화 공격을 받았다. 서부 시리아에서는 마론파 교회 앞에 폭발물 18kg 이상을 실은 차량이 발견됐고, 차량 주변에서는 극단주의 상징이 담긴 전단도 발견됐다.
남부 도시 사피타에서는 교회 문 앞에 “죽음을 경고하는 협박문”이 붙었다. 이는 마르 엘리아스 테러와 연계된 조직의 이름으로 작성된 것이었다.
공격을 당한 한 시리아 목회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은 교회만 공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을 약탈하고 불태웠고, 창문을 부수고, 물건을 훔치고, 상점까지 털어갔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를 불태웠습니다.”
시리아는 여전히 무슬림 다수 국가다. 전체 인구의 약 87%가 무슬림이며, 이 중 약 74%는 수니파다. 물론 대부분의 시리아 무슬림들은 극단주의자가 아니다. 그들 역시 시리아 붕괴 과정에서 큰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현재 기독교 공동체를 위협하는 폭력 상당수는 이슬람주의 세력과 지하디스트 네트워크, 급진화된 무장세력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이들은 기독교인과 알라위파, 드루즈족 같은 소수 집단을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이슬람 국가 건설의 장애물로 바라본다.
특히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은 갑자기 등장한 조직이 아니다. 그 뿌리는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와 살라피 지하디즘 운동으로 이어져 있다.
여기서 더 충격적인 것은 다음 세대의 변화다. 현재 시리아에서는 유치원 시기부터 지하디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2026년 3월 홈스의 한 학교에서는 여섯 살 여자아이들이 조회 시간에 “알라를 위해 죽음을 환영한다”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촬영됐다.
다마스쿠스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내 몸을 탄약으로 바치겠다”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영상이 거의 매일처럼 확산되고 있다. 이 구호는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향한 것이었다.
이슬람 설교자들은 기독교 마을에서 확성기를 이용해 개종을 압박하고 있으며, 교회 벽에는 “기독교인을 학살하라”는 낙서까지 등장했다. 여성들은 히잡 착용 압박을 받고 있고, 기독교 가정들은 괴롭힘과 언어폭력 때문에 아이들을 공립학교에서 빼내고 있다.
한 시리아 교회 지도자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이 계속 언어폭력을 당하면서 일부 가정은 결국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게 됐다”고 토로했다.
한편 2025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리야드에서 시리아 지도자 아흐마드 알샤라를 만나 “매력적이고 강인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이후 미국은 시리아 제재를 해제했고, 미국 국무부는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에 대한 해외 테러조직 지정을 철회했다. 그러나 마르 엘리아스 교회 폭탄 테러는 바로 그 조치 직전에 벌어졌다.
필자는 특정 정당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종교 자유 문제에 있어 강한 목소리를 내왔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현실은 회담과 정책 변화 이후에도 교회는 계속 불타고 있고, 기독교인들은 계속 떠나고 있으며, 아이들은 여전히 증오를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책임 없는 외교적 관여는 외교가 아니라 허용”이다. 이 문제는 시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나이지리아에서 수만 명의 기독교인이 신앙 때문에 학살당한 현실, 이집트 콥트 기독교인들에 대한 조직적 탄압, 사헬 지역 전역의 반기독교 폭력, 중국 가정교회 탄압, 에리트레아와 북한의 기독교인 수감 문제 등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러나 시리아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다마스쿠스는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눈이 멀었던 장소다. 말룰라 같은 고대 마을에서는 지금도 예수께서 사용하셨던 아람어로 기도하는 기독교인들이 존재한다. 일부 교회는 이슬람이 탄생하기 수세기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단순한 현대 종교 기관의 쇠퇴가 아니라, 기독교의 가장 오래된 살아 있는 뿌리들이 실제로 뽑혀 나가는 과정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우려 성명이 아니라 실질적인 압박과 행동이다.
시리아 정부는 서방의 인정과 투자, 국제적 정당성을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 소수자 보호를 반드시 협상의 조건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한 오픈도어, 국제기독연대, 고통받는 교회를 돕는 재단과 같은 단체들을 지원하고, 위험 속에서도 공동체를 지키는 시리아 총대주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시리아 기독교인들은 마음속에서 부활절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러나 거리에서 자유롭게 살아낼 수 없는 신앙, 무장세력이 밖을 배회하는 가운데 잠긴 교회 문 안에만 갇힌 신앙은 분명 공격받고 있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이제 세계가 시리아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