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바라본 평화로운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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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목사(세인트하우스평택)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도심의 한쪽, 조용히 숨 쉬는 배다리 공원을 걷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평화’라는 단어를 설명 없이 이해하게 된다. 유모차를 밀며 천천히 걸어가는 가족, 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펴고 웃음을 나누는 사람들, 손을 맞잡고 걸음을 맞추는 노부부,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하는 느긋한 산책. 그 모든 장면은 특별한 사건이 아닌데도 깊은 울림을 준다.

호수 위에는 철새들이 쉼을 얻고, 정해진 시간마다 솟구치는 분수의 물줄기는 반복 속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만든다. 조깅을 하는 이들의 호흡,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한켠에서는 양말을 팔고 뻥튀기를 튀기는 소박한 생업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곳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모두가 질서를 지키는, ‘소리 없는 공동체’다.

공원 옆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또 다른 평화가 펼쳐진다. 잔디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아이들, 자유롭게 책을 고르는 시민들, 남녀노소가 함께 만드는 조용한 독서의 풍경. 로비에서는 작은 전시가 열리고, 벽면에는 예술 작품이 걸려 있다. 사서들의 반복적이지만 정갈한 손길, 어린이 도서관에서 터져 나오는 자유로운 웃음, 주말마다 열리는 작은 극장까지-이 모든 것이 하나의 ‘문화적 평화’를 형성한다.

이러한 풍경은 단순한 여유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세 가지 중요한 평화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 평화는 인간다움의 회복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인간은 종종 기능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누구도 성과를 요구받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이렇게 말했다.
“한 사회의 문명 수준은 약자를 어떻게 돌보는가로 판단된다.”
유모차를 밀고, 아이를 돌보며, 노인을 배려하는 이 공간은 인간다움이 살아 있는 증거다‥

둘째, 평화는 공존의 기술이다.
공원과 도서관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충돌하지 않고 어울리는 법을 보여준다. 운동하는 사람과 쉬는 사람, 어린이와 노인, 인간과 자연이 함께 존재한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인간 사회를 “차이를 조율하며 공존하는 구조”라고 보았다. 이 공간은 바로 그 조율의 현장이다. 강요된 질서가 아니라 자율적인 배려로 유지되는 공동체, 그것이 평화의 본질이다.

셋째, 평화는 다음 세대를 위한 약속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 자유롭게 뛰노는 어린이들, 자연 속에서 숨 쉬는 생명들은 미래를 향한 희망이다. 인류학자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는 문화란 “세대를 이어 생존과 의미를 전달하는 장치”라고 말했다. 평화로운 공간은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교육의 장이다.

이러한 평화의 풍경은 전쟁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전쟁은 공간을 파괴하고, 시간을 단절시키며, 인간을 기능과 생존의 도구로 전락시킨다. 아이들의 웃음은 울음으로 바뀌고, 공원은 폐허가 되며, 도서관은 침묵 속에 닫힌다. 평화가 ‘자연스러운 상태’처럼 보일 때조차, 그것은 사실 수많은 희생과 선택 위에 세워진 결과다.

그래서 우리는 이 평화를 단순한 일상으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배다리 공원의 한 장면, 도서관의 한 페이지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 경쟁과 배제의 상극인가, 아니면 배려와 공존의 상생인가.

평화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이런 작은 공간에서부터 시작된다. 한 걸음 느리게 걷는 일, 서로를 배려하는 시선, 다음 세대를 위해 오늘을 가꾸는 선택. 그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질문으로 남는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의 평화를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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