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회장 김요섭)·한국교회사학회(회장 이상조)가 최근 경기도 용인시 소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총장 배광식)에서 ‘성경번역과 해석의 역사’라는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학술대회는 한국 교회 형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성경 번역의 흐름과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하며, 성경의 한국 전래 과정과 국역 성경의 형성, 그리고 번역 용어의 신학적 의미까지 폭넓게 다루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상규 박사(백석대)는 ‘국역 성경의 역사와 반포’를 주제로 발표하며, 한국어 성경 완역 115주년과 흠정역 성경 발간 415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성경 번역의 역사적 흐름을 재조명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성경이 한국에 처음 전해진 경로부터 한글 성경이 번역되고 보급되기까지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한국 교회사 속에서 성경 번역이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 한국 성경 전래의 시작과 초기 번역 흐름
이 박사는 “한국에 성경이 처음 전해진 시점은 18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 해안 탐사선이 충남 서천 마량진에 상륙하면서 조선 관리에게 전달한 영어 성경이 한반도에 유입된 최초의 성경으로 알려졌다”며, 이 성경은 흠정역 성경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어 “이후 성경은 중국어 번역본을 통해 점차 한국에 소개됐다”며 “19세기 초 중국에서 번역된 한문 성경 「신천성서」는 조선에 유입된 주요 성경 가운데 하나로, 초기 선교사들과 교류를 통해 전달됐다”고 했다.
특히 “독일 출신 선교사 귀츨라프는 1832년 조선을 방문해 한문 성경과 전도 문서를 전달했으며, 체류 기간 동안 일부 내용을 한글로 번역하기도 했다”며 “이 과정에서 번역된 주기도문은 단편적이지만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후 19세기 중반에는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가 조선을 방문해 성경 보급 활동을 펼쳤으며, 그가 전달한 성경은 후일 평양과 서북 지역 교회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며, 성경을 받은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후 교회 설립자로 성장했으며, 성경이 개인의 신앙을 넘어 공동체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 강조됐다.
◆ 해외에서 시작된 한글 성경 번역과 ‘교회’ 용어의 형성
그는 “한국어 성경 번역은 초기에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시작됐다.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 존 로스와 존 매킨타이어는 중국에서 조선인들과 협력해 한글 성경 번역을 추진했다”며 “이 과정에서 조선인 청년들이 번역 작업에 참여했으며, 이들은 신앙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으면서 번역과 선교의 주체로 성장했다”고 했다.
이어 성경 번역 과정에서 등장한 ‘교회’라는 용어의 형성에도 주목하며 “기존 한문 성경에서 ‘에클레시아’를 ‘회(會)’로 번역했던 것과 달리, 「예수셩교젼셔」에서는 ‘교회(敎會)’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을 중요한 변화”라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가르침과 교육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였다는 점에서 ‘교회’라는 번역이 더 적절했다”며 “이러한 특징은 당시 다른 종교들이 의식 중심의 신앙 형태를 유지했던 것과 대비되며, 기독교가 ‘가르침의 공동체’로 기능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또한 이수정이 번역한 성경에서는 여전히 ‘회’라는 표현이 사용된 사례도 소개하며, 번역 용어의 변화 과정이 시대적·문화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시사했다.
◆ 한글 성경 완역과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그는 “국내에서의 성경 번역은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1887년 이후 성경 번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대한성서공회 조직을 통해 체계적인 번역 작업이 추진됐다. 그 결과 1900년 신약 성경이 완역됐고, 1911년에는 구약까지 포함한 성경전서가 완성됐다”고 했다.
또 “이후에도 다양한 번역본이 출간됐지만, 1911년 성경전서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현재 한국 교회 다수는 개역개정판 성경을 사용하고 있으며, 동일한 성경 번역본이 강단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 “해방 이후에도 성경 번역과 보급은 외국 성서공회의 지원 속에서 이어졌다”며 “1940년대 후반 대량의 성경이 국내에 보급됐고, 대한성서공회 재건과 함께 한글 성경 출판이 지속됐다. 한국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 편찬 작업은 계속됐으며, 점자 성경까지 완간되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했다.
끝으로 이 박사는 “성경이 단순한 종교 문서를 넘어 한글 보급과 문맹 퇴치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성경을 통해 한글을 배우는 사례가 확산되면서, 한글이 사회 전반에 정착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이는 루터의 독일어 성경이나 흠정역 성경이 각각 독일어와 영어 발전에 미친 영향과 비교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분과별 발표도 진행됐다. 발표에는 ▲오광석 박사(감신대)가 ‘존 웨슬리의 ‘구약성서주석-웨슬리 성서주석에 대한 역사적, 신학적 연구’ ▲전희준 박사(아신대)가 ‘윌리엄 틴데일의 'Feeling Faith' 연구’ ▲David W. Kim 박사(국민대)가 ‘만주에서 한반도로 스코틀랜드 존 로스와 19세기말 한글성경번역사’ ▲김호욱 박사(광신대)가 ‘신학 형성 과정이 성경 번역에 미치는 영향 고찰’ ▲박형신 박사(남서울대)가 ‘네스토리우스고'(Nestorian Church) 명칭에 대한 역사적 재검토’ ▲박상봉 박사(합신대원)가 ‘1655년 '피에몬테 부활절'에 대한 장 레제(Jean Leger)의 보고서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