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마크 크리치 목사의 기고글인 ‘이란 전쟁의 진짜 배경은 무엇인가'(What’s really behind the war with Iran)를 1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마크 H. 크리치 목사(Rev. Mark H. Creech)는 노스캐롤라이나 기독교행동연맹(Christian Action League of North Carolina, Inc.)의 사무총장이다. 그는 이 직책을 맡기 전에 20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다섯 곳의 남침례교회와 뉴욕주 북부에서 한 곳의 독립침례교회를 섬겼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미국이 다시 중동에서 전쟁에 나섰다. 최근 며칠 사이 미국은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과의 충돌에 본격적으로 개입했으며, 이 갈등은 빠르게 확대되면서 향후 수년 동안 중동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분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전쟁은 결코 가볍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막대한 비용과 심각한 위험, 그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를 동반한다. 그러나 한 나라가 이러한 전쟁에 뛰어들었다면, 국민은 단순히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뿐 아니라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도 알 권리가 있다.
최근 미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는 기자들에게 이란 지도부에 대해 “광인들이 운영하는 정권”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외교적 언어로서는 다소 거칠게 들릴 수 있는 표현이었지만, 그 발언은 많은 미국인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가리키고 있다. 이란과의 갈등은 단순한 지정학적 경쟁이 아니라 정치 권력과 급진적 종교 광신이 결합된 이념적 구조에 의해 상당 부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란은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1979년 혁명을 통해 세워진 체제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이 혁명은 세속적 왕정을 무너뜨리고 성직자가 국가의 궁극적 권위를 행사하는 신정 체제를 구축했다. 이 체제에서 최고 권력은 이슬람 혁명을 인도할 책임을 가진 성직자 지도자에게 집중된다. 오랫동안 그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은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나이였다. 그는 30년 넘게 이란을 통치하다가 이번 분쟁이 시작된 초기 국면에서 사망했다. 이후 이란의 종교 지도부는 그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나이를 후계자로 세웠다.
이 체제는 출범 초기부터 자신들의 목표가 이란 국경 안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도자들은 혁명을 중동 전역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도를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란은 이러한 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여러 무장 조직과 동맹 세력을 구축해 왔다. 헤즈볼라와 하마스 같은 단체들이 테헤란으로부터 자금과 무기, 훈련을 제공받으며 이란의 혁명 전략을 실행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동해 왔다.
수십 년 동안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러한 전략의 결과를 산발적인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미군은 이라크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민병대와 싸웠고, 시리아에서는 이란이 무장 세력을 지원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또한 이란의 지원을 받는 단체들이 감행한 공격에 대응해야 했다. 이 갈등은 종종 서로 다른 위기들이 이어지는 형태로 보였다. 어떤 곳에서는 로켓 공격이 발생하고, 다른 곳에서는 지역 충돌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항상 동일한 원천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전쟁은 이전과 다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더 이상 이 네트워크의 “촉수”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머리” 자체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갈등의 핵심에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이란 정권이 핵무기 능력을 확보하기 직전까지 접근했다는 우려다. 미국 정부는 혁명 이념을 추구하고 무장 조직들을 지원하며 이스라엘의 파괴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정권이 핵무기를 갖게 된다면 중동의 권력 균형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상황을 막는 것은 오랫동안 미국의 대이란 정책의 핵심 목표였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왔다. 그들의 판단에 따르면 지금 정권을 견제하는 것은 훨씬 더 위험한 미래의 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이란 지도부는 또 다른 요소, 즉 종말론적 성격을 지닌 시아파 신앙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 신앙은 언젠가 마흐디(Mahdi)라는 메시아적 인물이 등장해 새로운 이슬람 통치 시대를 열 것이라는 기대를 포함하고 있다. 모든 이란 관리들이 이러한 기대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수사 속에서 이러한 종말론적 요소가 나타나는 사실은 오랫동안 서방 정책 결정자들을 우려하게 만들어 왔다. 혁명적 이념이 종말론적 기대와 결합하고, 동시에 핵무기 개발이 진행될 경우 위험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권력이 종교적 운명 의식과 결합한 상태에서 세계에서 가장 파괴적인 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인류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이유로 종교 자체가 문제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잘못된 판단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현대 시대의 가장 폭력적인 정권들 가운데 상당수는 종교와 무관했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둥 같은 독재자들은 철저히 세속적 이념 아래 통치했지만, 그들의 정권 역시 엄청난 규모의 고통과 희생을 낳았다.
이 모든 사례에서 공통된 위험은 신앙 자체가 아니라 광신주의였다. 특정 이념이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으며 군사력으로 강요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 말이다.
이 지점에서 일부 비판자들은 반문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도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지 않는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삶의 모든 영역에 권위를 가진다고 믿지 않는가?
기독교인들은 실제로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며 그것이 성경을 통해 계시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적 기독교는 진리를 전하는 방식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왕국을 정치적 지배나 군사적 정복을 통해 세우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대신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설득하며 사람들을 회개와 믿음으로 부르라고 명령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의 구속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강압이 아니라 마음에 호소한다. 진리를 공적으로 선포하지만,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자유는 개인에게 남겨 둔다. 미국과 같은 민주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은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공적 토론에 참여하며 강요가 아니라 설득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기독교적 가치가 법으로 반영될 때에도 그것은 다른 도덕적 신념들과 마찬가지로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성경은 전쟁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도 설명한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묻는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야고보서 4:1). 성경에 따르면 전쟁의 가장 깊은 원인은 종교나 정치만이 아니라 인간 마음 속의 죄된 욕망에 있다.
이 타락한 욕망이 이념적 확신과 정치 권력과 결합할 때 그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파괴적이 될 수 있다.
세상에 필요한 것은 진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을 낮추고 권력 남용을 억제하며 모든 통치자가 결국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참된 진리다.
역사는 종교든 세속적 이념이든 어떤 사상이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며 폭력으로 그것을 강요하려 할 때 결코 평화로운 결과를 낳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위협 앞에서 국가들은 때로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책임에 직면하게 된다. 정부는 질서를 유지할 뿐 아니라 악을 억제하기 위해 존재한다. 성경은 시민 권세가 “헛되이 칼을 가지지 아니한다”(로마서 13:4)고 말한다. 어떤 정권이 이웃을 위협하고 폭력을 후원하며 파괴적인 이념을 강요하려 할 때, 그것에 맞서는 일은 비극적이지만 필요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전쟁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유를 짓밟고 양심을 침묵시키며 폭력을 확산시키는 세력에게 세상을 내어주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때로는 그러한 악에 맞서는 것이 침략이 아니라 보호의 행위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 그리고 평화가 번성할 수 있는 조건을 지키기 위한 방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