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라이언 돕슨 작가의 기고글인 ‘교회 안에서 반유대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Antisemitism is growing in the Church. Something has gone wrong)를 7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라이언 돕슨(Ryan Dobson)은 여섯 권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작가이자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강연가로, 백만 명이 넘는 청중에게 강연하며 비영리단체와 신앙 기반 기관을 위한 관계 중심의 지속 가능한 기부 전략을 제시해 왔으며, Dobson Philanthropic의 창립자이자 ‘Fundraising is Dead’ 팟캐스트 진행자로서 기존의 모금 방식을 넘어 신뢰와 감사, 장기적 파트너십에 기반한 새로운 자선 전략을 제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가 증가하고 있다. 폭력적인 공격 사건들은 하루 정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가 곧 잊혀진다. 그러나 훨씬 덜 주목받고 있는 문제는 복음주의 진영의 대화 속에서도 반유대 정서가 점점 아무렇지 않게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조사들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미국 유대인의 91%는 지난 1년 동안 발생한 폭력적 반유대 공격 때문에 미국에서 덜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또한 86%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테러 공격 이후 반유대주의가 더 증가했다고 말한다. 거의 3분의 1에 가까운 사람들은 지난 1년 동안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개인적으로 반유대적 공격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만으로는 미국 교회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에 필자는 총괄 프로듀서 로널드 도(Ronald Daw), 작가 앤드루 클레이번(Andrew Klavan), 감독 사이러스 노라스테(Cyrus Nowrasteh)와 함께 히브리 성경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 「더 코버넌트(The Covenant)」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하다. 예수님과 초대교회의 믿음을 형성했던 구약의 이야기를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다시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어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드러나는 가벼운 경멸의 태도는 더 깊은 문제를 드러낸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약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들이 복음서와 서신서로 곧바로 넘어가면서 토라와 예언서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그 결과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완성하신 언약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유대인에 대한 경멸이 나타날 때, 그것은 정치적 문제이기 전에 신학적 문제를 먼저 드러낸다.
실제로 필자가 이스라엘에서 들었던 가장 거친 말들은 테러리스트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왔다.
필자와 아내는 지난 12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우리는 예루살렘을 걸었고, 빈 무덤을 방문했으며, 노바 음악축제 학살 현장을 찾았다. 또한 10월 7일 공격으로 자녀를 잃은 가족들을 만났다. 전사한 군인들의 가족들과 함께 울었고, 인질로 잡혔다가 풀려난 사람들과도 만났으며, 돌아오지 못한 자녀들을 둔 부모들과도 시간을 보냈다.
그 후 필자는 이스라엘 국기 옆에 서 있는 자신의 사진을 단순히 SNS에 올렸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댓글과 메시지 창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 쏟아졌다. 분노였다.
그것은 정치적 토론이 아니었다. 단순한 의견 차이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어두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공격들은 세속적인 비판자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성경을 믿는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왔다.
한 사역자는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며 “당신은 바보다”라고 말했다. 또 한 여성은 이렇게 댓글을 남겼다. “유대인들이 2,000년 동안 그리스도를 찾지 못했다면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선택받은 백성이다.”
필자는 충격을 받았다. 필자는 성경이 유대인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목격한 반응은 무언가가 변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성경으로부터 자신을 떼어 놓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성경을 몸소 구현하셨다.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 사탄은 시편 91편을 인용했다. 그러나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세 번 모두 토라의 말씀으로 시험에 응답하셨다. 또한 십자가 위에서도 시편 22편의 첫 구절을 외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의 언어와 사고는 히브리 성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 11장에서 이방인 신자들에게 유대인에 대해 교만해지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감람나무의 비유를 사용했다. 이방인 신자들은 접붙여진 가지라는 것이다. 우리는 뿌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에서 오는 영양을 함께 누리는 존재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신자들은 감사와 경외 대신 교만한 태도를 보인다. 구약이 무시될 때 이러한 겸손은 사라진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잊으면 이스라엘은 의미 없는 존재가 된다. 예언서를 잊으면 포로 생활은 심판이 아니라 거절로 오해된다.
로마서 9장부터 11장을 잊으면 이방인 신자들은 자신들이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이야기 속으로 접붙여졌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그 결과는 미묘하지만 매우 위험하다. 유대인을 사랑한다고 해서 어떤 정부를 무조건 지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 정책은 논쟁할 수 있고 군사 결정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에 대한 경멸은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
만약 당신의 신학이 하나님께서 율법과 예언자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메시아를 주신 그 민족을 멸시하게 만든다면, 그 신학 어딘가가 무너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추상적 논쟁이 아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소중히 여긴다고 말하는 성경을 보존해 온 민족의 살아 있는 후손들이다.
반유대주의의 해독제는 정치적 진영 논리가 아니다. 그것은 성경적 이해다. 기독교가 로마나 워싱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토라와 예언서에 깊이 잠길 때, 우리는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초대교회를 형성했던 언약의 틀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만약 우리가 뿌리를 잊어버린다면 열매가 쓰게 되는 것을 놀랄 이유가 없다.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체한 존재가 아니다. 교회는 은혜로 그 나무에 접붙여진 존재다. 그리고 은혜에는 경멸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