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6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캐나다 차기 잠수함 도입 사업(CPSP)이 단순한 기업 간 방산 수주전을 넘어 한국과 독일의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잠수함 자체의 성능 경쟁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수주전의 초점은 캐나다에 얼마나 깊고 장기적인 산업 생태계를 제시할 수 있느냐로 옮겨갔다.
한국은 방산·조선·자동차·에너지를 아우르는 종합 산업 인프라 패키지를 전면에 내세웠고, 독일은 인공지능(AI)과 자원, 우주 협력을 결합한 보상안을 앞세워 캐나다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CPSP는 무기 도입 사업을 넘어 향후 수십 년간의 산업 협력 구조를 결정짓는 중대 분기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범정부 특사단 가동… 한국 제조업 ‘원팀’ 전략
지난 26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범정부 전략경제협력 특사단이 캐나다 오타와로 출국하면서,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사업 판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이번 특사단에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주원호 HD현대중공업 사장 등 사업에 직접 참여하는 핵심 기업 인사들과 함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까지 합류했다.
방산과 조선, 자동차, 에너지로 이어지는 한국 제조업의 핵심 축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단일 기업 차원의 경쟁을 넘어 국가 차원의 총력전 양상이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 이번 사업을 계기로 방산 수출을 산업 전반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무기 수출 넘어 ‘산업 인프라’ 패키지 제시
한국은 이번 CPSP에서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돼 왔던 기업 간 경쟁 구도를 해소했다. 한화오션이 사업을 총괄하고 HD현대중공업이 기술과 생산 역량을 지원하는 ‘조선 원팀(One Team)’ 체제를 구축하며 수주 전략을 일원화했다.
여기에 현대차그룹이 참여해 캐나다 정부가 요구한 현지 공장 설립에 대해 단순한 완성차 조립을 넘어 수소 생산·저장·운송·충전·활용을 아우르는 ‘수소 밸류체인 클러스터’를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클러스터는 수조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연간 수천 명의 고급 기술 인력 고용과 함께 캐나다 서부·중부 물류망과 연계된 수소 상용차 허브 구축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산 계약 체결 이후에도 20~30년간 이어질 수 있는 산업 협력 구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략은 단기 수주를 넘어 장기적 산업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강훈식 특사단장은 출국 전 “이번 수주는 국내에서만 40조원 이상의 생산 유발 효과와 2만 명 이상의 고급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잠수함 사업 수주 시 조선·철강·전자·소재 등 300개 이상의 협력업체가 참여해 경제적 파급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도 일정 경쟁… 한국의 시간표 강점
현재 캐나다 해군이 운용 중인 빅토리아급 잠수함은 잦은 정비 문제로 가동률 저하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새로운 잠수함을 하루라도 빨리 확보하는 것이 캐나다 정부의 주요 과제로 꼽힌다.
한화오션은 2035년까지 4척을 인도하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는 독일 측 제안보다 최소 2~3년 빠른 일정으로 평가되며, 북극 항로 감시와 대서양 작전 능력 강화를 중시하는 캐나다로서는 실질적인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 AI·자원·우주 협력으로 맞불
독일도 수주전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주력 사업자인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즈(TKMS)를 중심으로 국가 차원의 보상 패키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독일은 캐나다 인공지능 기업과 협력해 잠수함 운용·분석 소프트웨어에 현지 AI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위성·항공우주 분야 공동 연구를 통해 캐나다 전략 산업 육성을 지원하고, 캐나다 북부 광산 개발에 대한 공동 투자와 장기 구매 계약을 패키지로 묶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제안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이라는 정치·안보적 명분과 맞물려 캐나다 보수·안보 진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캐나다의 선택, ‘산업 운명’이 기준
결국 캐나다의 최종 선택 기준은 잠수함 성능 자체가 아니라 어느 국가와 더 깊고 장기적인 산업 운명을 공유할 것인지에 맞춰질 전망이다. 캐나다 정부는 오는 3월 최종 제안서 접수를 마감한 뒤, 올 상반기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독일 모두 잠수함 성능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누가 더 설득력 있게 캐나다의 미래 산업 지도를 그려주느냐가 이번 사업 수주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