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목사님은 정부 지시에 협조하지 않아요?” “나는 방역지침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하나, 예배드리지 말라는 지시에는 협조할 수 없습니다! 나는 정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니까요.” 정부 지시나 회사 지침에 따라 예배 나오지 않는 분이 있어도 존중했습니다. 찬양대 못 하겠다는 분도 존중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예배를, 새벽기도와 금요 영성집회까지 계속했습니다. 성경학교 수련회 캠프, 소그룹 순모임, 제자훈련 등 하겠다는 분을 데리고 계속했습니다. 주일 오후 예배는 중직자 중심 카이로스 코스 선교 훈련까지 은혜 가운데 진행했습니다. 이번 칼럼집 제목은 그런 여정에서 나온 글입니다. 저라고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지금까지 제 개척 목회 여정이 두려움의 산실에서 싹터온 것입니다. 두려움이 전혀 없는 인간이 있겠나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의 용기는 켜켜이 쌓인 두려움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조승호 – 용기의 모태는 두려움이다
나는 종종 이렇게 쓰인 범퍼 스티커를 본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믿는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하다.” 나는 그 말에 이렇게 되묻게 된다.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전해주는 책이라고 당신이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책이 사실 인간의 말을 담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성서가 낙태 문제라든지 여성 인권 문제, 동성애 문제나 종교적 패권주의 문제, 서구식 민주주의 문제 등 현대 사회의 여러 제반 문제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성서를 거짓된 우상 또는 전능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게 해주는 수단으로 떠받들지 않고, 우리 스스로 어떻게 살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성서가 우리의 삶을 이끄는 무오한 지침이 아니라는 데에는 명백한 이유들이 있다. 특히 지금까지 내가 지적해왔듯이, 학자이든 일반 독자이든, 우리는 성서의 원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바트 어만 - 성경 왜곡의 역사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을 때, 하나님은 자신을 이렇게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떤 피조물에도 의존하지 않으시며, 스스로 존재하시고, 스스로 말씀하시며, 스스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증명할 필요가 없는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영원히 왕이시니라"(출 15:18),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 44:6). 이처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은 인간의 철학이나 이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말씀으로 증언하시는 자기계시의 진리입니다.
이상환 - 기독교인만 읽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