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평택 고덕지구 삼성반도체 캠퍼스를 방문한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최첨단 설비와 거대한 규모보다 더 큰 울림을 준 것은 그곳을 가득 메운 청년들의 얼굴이었다. 현장에서 들은 설명에 따르면 삼성 정직원만 약 2만 명, 협력업체와 파견 인력까지 합치면 7만 명이 넘는 인원이 일하고 있었다. 당시 제3공장이 건설 중이었고, 현재는 제4공장까지 가동 중이니 지금은 10만 명에 가까운 청년 세대가 그 공간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을 것이다. 청년에게 일자리가 주어질 때 사회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그러나 최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는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 청년(19~34세) 네 명 중 한 명은 혼자 살고 있으며, 자살률은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 명 중 한 명은 번아웃 상태에 놓여 있고, 청년의 평균 채무는 소득의 1.7배에 달한다. 삶의 만족도는 OECD 38개국 중 31위. 이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청년 세대의 집단적 고통을 보여주는 경고음이다.
보고서는 건강, 주거, 고용, 임금, 신뢰, 공정, 여가 등 12개 영역, 62개 지표를 통해 청년의 삶을 진단했다. 그 결과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정신건강 악화였다. 최근 1년 내 학업, 취업 준비, 업무 과정에서 번아웃을 경험한 비율은 32.2%에 달했다. 진로 불안은 정서적 소진으로 이어졌고, 특히 30~34세 청년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8.5명으로 가장 높았다. 이 같은 현실은 고립감 심화, 결혼 기피, 부채 증가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며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해법은 분명하다. 청년이 스스로 설 수 있는 자립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맞춘 재교육과 전환 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기업이 투자와 채용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제도와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 청년의 불안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는 결국 미래를 잃게 된다.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태양 상사」는 IMF 외환위기라는 절망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작은 중소기업을 이끄는 청년 리더가 무너진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은 단순한 드라마적 장치가 아니라, 실제로 그 시대를 통과해 온 청년 세대의 정신을 상기시켰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았던 ‘상사맨’의 도전은 오늘의 청년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필자 역시 청년 시절 깊은 혼란과 불안을 겪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비전을 세우고, 준비의 시간을 견뎌냈다. 청년기를 통과해 온 한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다. 청년의 시간은 언제나 불안하지만, 그 불안을 견뎌낸 사람은 결국 자기 길을 만들어낸다.
청년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다. 국가와 지역사회, 종교와 교육은 청년을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반자로 바라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청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희망의 빛으로 앞길을 밝혀주는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일제강점기와 전쟁, 가난이라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사업보국”이라는 신념을 품었다. 자본도 기술도 부족했지만, 그는 청년다운 도전정신과 장기적 비전으로 작은 상회를 글로벌 기업의 출발점으로 만들었다. 위기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그의 태도는 오늘의 청년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고, 청년이 살면 민족이 산다.”
미국의 사상가 랠프 왈도 에머슨은,
“청년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자기 인생을 시작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청년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