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상승에도 소비는 멈춘 한국 경제

한은 “부동산발 가계부채 누증, 민간 소비 매년 최대 0.44%p씩 둔화”

부동산 가격이 상승해도 소비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이 30일 발표한 ‘부동산발 가계부채 누증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누적된 주택담보대출 부담이 민간 소비의 회복력을 매년 최대 0.44%포인트씩 떨어뜨린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공동 작성한 한국은행 조사국 구조분석팀 김찬우·박동현·주욱·유성현 연구원은 최근 10년 동안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3.8%포인트 증가해 중국과 홍콩에 이어 세 번째로 빠른 증가 속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GDP 대비 민간 소비 비중은 오히려 1.3%포인트 줄어들어, 부채 부담이 소비 여력을 잠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만약 가계부채를 2012년 수준으로 유지했을 경우 지난해 민간 소비가 실제보다 4.9~5.4% 더 높았을 것이라는 추정도 내놓았다.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소비 둔화(0.8%포인트)와 가계부채 누증에 따른 제약(0.4%포인트)이 최근 민간 소비 성장률 하락의 대부분을 설명한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가 소비를 지속적으로 억누른 이유로 세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최근 10년간 원리금부담비율(DSR)이 급격히 상승해 가계의 상환 부담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빠른 상승폭을 기록했으며, 주택담보대출 만기가 길어 이 부담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둘째, 부동산 가격 상승이 소비로 이어지는 ‘부의 효과’가 극히 낮다는 점이다. 주요국에서는 집값 상승이 소비를 0.03~0.23% 증가시키는 반면, 한국은 0.02%에 불과했다. 주택을 유동화할 금융수단이 부족하고, 집값이 올라도 주거 수준 개선이나 소비 확대로 쉽게 이어지지 않는 구조 때문이다.

셋째, 대출을 통해 공급된 유동성이 소비보다는 상가·오피스텔 등 비실물 자산 투자로 흐르며 오히려 가계의 현금흐름을 악화시킨 점도 영향을 미쳤다. 공실률 증가와 수익성 악화로 상환 부담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찬우 차장은 “가계부채 문제는 갑작스러운 충격이 아니라 서서히 소비를 움츠러뜨리는 동맥경화와 같은 형태”라며 “장기적으로 일관된 정책 대응이 이뤄지면 부채 누증이 완화되고 소비 제약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분석은 한국 경제가 ‘부채의 그림자’ 아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순한 부동산 시장 대응을 넘어 가계부채 구조 자체를 개선하는 정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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