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별세, 세대를 초월한 ‘국민배우’의 마지막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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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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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연기 인생으로 사랑받은 대배우… 동료와 후배들의 애도 물결 이어져
과거 리어왕 역의 배우 이순재가 서울 SNU 장학빌딩 베리타스홀에서 열린 연극 리어왕 연습실 공개 행사에서 장면시연을 하던 모습. ⓒ뉴시스

91세를 일기로 별세한 배우 이순재는 한국 연기계를 대표하는 ‘대배우’이자 세대를 아우른 ‘국민배우’로 기억된다. 70여 년에 걸친 연기 인생 동안 그는 스스로에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장르와 형식에 꾸준히 도전하며 젊은 세대에까지 깊은 영감을 주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다.

이순재는 1990년대 MBC 드라마 ‘사랑은 뭐길래’, KBS ‘목욕탕집 남자들’ 등을 통해 강한 가부장적 캐릭터를 선보였고, ‘허준’, ‘상도’, ‘이산’ 등 사극에서는 묵직한 연기와 존재감으로 확고한 신뢰를 얻었다. 이후 2006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기존 이미지를 내려놓고 코믹 연기에 도전해 ‘야동 순재’라는 별칭을 얻으며 젊은 시청자층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칠순이었다.

예능에서도 활약은 이어졌다. 2013년 tvN ‘꽃보다 할배’에서는 흔들림 없는 체력과 호기심, 그리고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직진 순재’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며 전 세대의 팬층을 넓혔다. 영어와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다른 언어에도 관심을 보이는 그의 모습은 ‘평생 배우는 삶’을 상징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이후 이순재는 연극 무대에 대한 애정도 유난히 깊었다. 2010년대 후반에는 박소담, 권유리, 김슬기 등 젊은 배우들과 함께한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로 대학로 관객에게 다시 한번 강한 인상을 남겼다. 구순을 넘긴 지난해에는 새로운 형식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 참여해 샤이니 민호와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교육자로서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다.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제자들을 가르치며 연기뿐 아니라 삶의 태도, 예술가로서의 철학을 강조했다. 제자들은 “눈빛만으로 압도했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고 회상하며 고인을 기리고 있다.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연예계 전반에서 추모가 쏟아졌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함께했던 정보석은 SNS를 통해 “연기와 삶의 스승이었다”고 추모했고, 제자 유연석은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이 선생님 덕분이었다”고 고개를 숙였다. 배정남, 박은혜, 김혜수, 한지일 등 여러 배우도 고인을 향한 감사를 전하며 그리움을 드러냈다. 예능 PD 나영석은 “끝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던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고인은 배우계에서도 리더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회장을 세 차례 역임했다. 1992년에는 제14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며 정치권에 발을 들였고,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예술계에 기여했다.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는 최고령 대상 수상자가 되며 한국 배우사의 한 이정표를 남겼다.

건강 악화로 최근 활동을 중단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별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6시 20분이다. 장지는 경기도 이천 에덴낙원이며, 유족으로는 부인 최희정 씨와 아들 이종혁 씨, 딸 이정은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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