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레베카 맥로린의 기고글인 ‘교회에 가는 것이 당신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Going to church could save your life)를 1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레베카 맥로린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르네상스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런던의 오크힐 신학대학(Oak Hill Theological College)에서 신학 및 목회학 학위를 취득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필자는 당신이 심각한 우울증을 겪어 본 적이 있거나, 혹은 그런 고통을 겪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새 천년이 시작된 이후, 서구 사회 전반에서는 우울증·불안·자살 충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미국에서는 2015년에서 2023년 사이, ‘평생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한 성인의 비율이 거의 10%포인트 상승하여 29%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현재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거나 과거에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7%포인트 증가하여 17.8%가 되었다. 우리는 과거 정신 건강 문제와 관련된 수치심과 낙인을 많이 없앴다. 그러나 그 문제 자체를 줄이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기름 유출처럼 계속 번져, 점점 더 많은 사람을 날개가 젖어 추락하는 갈매기처럼 붙잡아 버렸다.
이 정신 건강 재앙은 특히 여성에게 치명적이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인류 역사상 가장 ‘여성 친화적인’ 문화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문화 속 여성들은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다. 여성의 37%가 평생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고 보고한 반면, 남성은 20%였다.
정신 건강 위기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더 가혹했다. 2023년에는 12~17세 소녀의 27.3%, 소년의 9.4%가 지난 1년 동안 주요 우울 에피소드를 경험했다고 답했는데, 이는 2004년 수치의 두 배가 넘는다. 또한 2009년에서 2021년 사이 미국 고등학생 가운데 “지속적인 슬픔 또는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 비율은 26%에서 44%로 급증했다. 비극적으로, 2007년에서 2021년 사이 10~24세의 자살률도 62% 증가했다.
그렇다면 이 우울과 절망을 몰아가는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은 코로나19를 탓하지만, 팬데믹 이전부터 우울증은 이미 “악화되는 공중보건 위기”였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의 폭발적 증가다. 이는 고립, 비교, 다양한 정신 건강 문제가 사회적 전염처럼 번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모든 책임을 질 수는 없다.
또 다른 원인은 결혼의 감소다. 많은 비종교인은 혼외 성관계에 대한 수용이 높아지면 정신 건강과 행복이 증가한다고 생각하지만, 자료는 정반대다. 특히 여성은 성적 파트너 수가 많을수록 우울·슬픔·자살 충동·약물 문제의 위험이 높아졌다. 반대로 결혼은 보호 효과를 보였다.
그리고 이제 점점 더 분명해지는 또 하나의 요인은 교회 출석의 감소다.
정신 건강을 위한 ‘처방’
필자는 ‘정신 건강을 위한 상위 10가지 비결’과 같은 제목의 글을 수도 없이 읽어보았다. 그중 ‘교회 출석’을 언급한 글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심리학자들은 운동, 수면, 건강한 식단, 요가, 명상 등을 권한다. 그러나 “조직화된 종교”는 어색한 존재처럼 취급된다.
물론 교회는 종종 부정적 이미지와 연결된다. 교회를 떠난 후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자기애·자기추구를 강조하는 문화 속에서 오히려 기독교 신앙이 정신 건강에 유익하다는 사실은 직관과 반대된다.
필자의 한 친구도 기독교를 알기 전에는 스스로를 “본질적으로 좋은 사람”이라 여기려 애썼다. 그러나 신앙을 받아들인 후, 성경의 자기 이해는 그녀가 자신의 죄성과 연약함을 인정하게 했고, 동시에 하나님께 깊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닫게 했다.
많은 사람은 자기애를 우선하고 종교적 진리를 거부하면 행복해진다고 말하지만, 연구는 정반대를 보여준다. 매주 교회에 가는 것은 우울증·슬픔·자살 충동을 막는 강력한 보호 요소다. 2022년 연구 분석에 따르면, 매주 예배 참석자는 전혀 참석하지 않는 사람보다 향후 우울증 위험이 33% 낮았다.
이 정도 효과를 가진 약이 있다면 누구나 처방받을 것이다. 또한 이미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도 교회 출석을 할 경우 회복률이 훨씬 높았다. 교회는 우울을 악화시키는 공간이 아니라, 의학적으로도 회복을 돕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단, 다른 약처럼 꾸준함이 필요하다.
아마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은 몰라요. 나는 교회에 상처가 있어요.” 필자는 심각한 상처를 경험한 이들을 많이 알고 있다. 가정이 사랑과 상처가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 될 수 있듯, 교회도 그렇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은 가정 경험이 가족 자체를 부정하는 이유가 되지 않듯, 아픈 교회 경험도 교회 전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건강한 교회야말로 치유의 공간, 심지어 문자 그대로 생명을 구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