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고 앞.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은 교문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긴장과 압박에서 벗어난 듯 한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교문 앞에는 시험 종료 시간을 맞추어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들었고, 늦가을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따뜻한 환호와 포옹이 이어졌다.
김재강(18)군은 “집에 가서 게임하고 친구도 만날 거예요. 너무 행복해요”라며 활짝 웃었다. 뒤이어 나온 국동연(18)군은 “밤새 게임하고 싶다”며 “19년 동안 이것 하나만 생각하고 달려온 것 같은데, 막상 끝나니 후련하면서도 허무하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곳곳의 고사장에서는 이처럼 일찍 퇴실한 수험생들이 기지개를 켜며 자유를 만끽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광진구 광남고에서 시험을 치른 이상희(20)양은 “집에 가서 넷플릭스를 보며 푹 쉬겠다”고 했고, 함께 시험을 본 이하은(21)양은 “오랜만에 엽기떡볶이를 먹을 것”이라며 소소한 행복을 전했다. 긴 수험 기간 동안 미뤄둔 일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학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방감을 표현했다.
종로구 경복고에서 시험을 마친 구민준씨는 “친구와 일본 여행을 가려고 한다”며 “구체적으로 계획하진 못했지만 시험이 끝나면 꼭 가자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끝났다는 게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교문을 나섰다.
고사장 앞에서 자녀를 기다리던 부모들의 눈빛에도 긴장이 풀린 뒤의 안도감과 애틋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김성인(49)·이은하(49)씨 부부는 “예비소집일까진 멀쩡하더니 오늘 아침 갑자기 소화제와 두통약을 찾으며 긴장하더라”며 안쓰러운 마음을 전했다. 아들은 시험 전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큰절하는 영상을 보내왔다고 한다.
여의도여고 교문 앞에서 첫째 딸을 기다리던 김은영(47)씨는 “딸이 꼭 오라고 했다. 가방도 들어달라고 했다”며 미소지었다. 민수정(49)씨는 “딸에게 마라탕을 사주고 싶다”며 “집에 고기도 미리 사뒀다”고 말했지만, 평소 잠을 줄여 공부하던 딸을 떠올리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오후 5시, 탐구 영역 시험이 끝나며 본격적인 퇴실이 시작되자 교문 앞은 환호와 박수로 가득 찼다. 수험생들은 부모와 친구, 연인에게 달려가 포옹하며 그동안의 노고를 나누었다. 한 수험생이 “엄마!”라 외치며 달려가자 어머니는 “눈물이 난다”며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강동헌(19)군은 “처음으로 엄마가 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여의도여고에선 남매의 따뜻한 포옹도 이어졌다. 한의예과에 재학 중인 구경흥(21)군은 동생 구가현(19)양을 응원하기 위해 시험 종료 직후 아버지와 함께 달려왔다. 두 남매는 서로를 보는 순간 포옹하며 긴 수험 기간 동안 공유한 감정을 나눴다.
서울 강남구 개포고에서 시험을 치른 이규선(20)군은 “레슬링을 배우겠다”고 말하며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수능 준비 때문에 하고 싶던 운동을 하지 못했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뒤이어 나온 육연준(20)군은 “취미를 물어보면 항상 ‘수능 공부’라고 말할 정도로 몰두했다”며 “이제는 새로운 취미를 찾겠다”고 했다.
이모(19)씨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컴퓨터를 사고 싶다고 했다. “카페 알바만 생각했다”며 오랫동안 품어온 소박한 바람을 밝히자, 그를 기다리던 어머니 강모(48)씨는 “일 년 동안 한 번도 짜증을 낸 적이 없다”며 “연년생 동생 때문에 많이 챙겨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고 애틋함을 드러냈다.
여의도여고에서 나온 이나린(19)양은 “운전면허를 먼저 따고 싶다”며 “엽떡 같은 자극적인 음식도 꼭 먹고 싶다”고 했다. 이미화(58)씨는 딸의 말을 들으며 “엽떡 사줘야겠다”고 웃었고 모녀는 곧바로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정재은(19)양은 책상에 붙였던 스티커를 이마와 옷에 붙인 채 교문을 나섰다. 그는 “부모님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시험이 너무 어려워 기절할 뻔했다”고 긴장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함께 나온 최지윤(19)씨는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훔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수능을 끝낸 수험생들은 저마다 다른 계획과 표정 속에서 앞으로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을 맞이한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는 또 한 번 ‘수능의 하루’를 한국 사회의 특별한 풍경으로 남겼다. 늦가을의 공기 속에서 울려 퍼진 환호와 안도의 숨결은 오랜 시간 이어진 수험 생활의 끝을 조용히 감싸주고 있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