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종교개혁자들이 우리 시대의 관심사, 근심거리 그리고 열망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의 저작들에서 지금과 동일한 시대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역사를 되새김질 하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개혁자들이 우리 시대의 관심사, 근심거리 그리고 열망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의 저작들에서 지금과 동일한 시대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역사를 되새김질 하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종교개혁자들의 저술 속에서는 다음의 주제가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다. 곧, 신앙의 뿌리로 되돌아가야 하며 기독교 복음의 순전한 양식을 다시 소유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성 말이다. 순전성은 관련성을 드러내는 시금석인즉, 순전한 복음이라면 상황과 관련을 맺고 있으면서도 견고한 영속성을 잃지 않고 있음이 드러날 것이다.
알리스터 맥그래스 – 종교개혁 시대의 영성
믿음의 차원에서 시작하여 기름부음을 거쳐 영광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영적인 진보와 발전이 있다. 믿음은 우리의 기초, 기름부음은 우리의 통로, 영광은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적 역할을 한다. 이것은 성령님이 우리에게 제공해 주신 디딤돌로, 하나님의 영광에 다가갈 때 그것이 그분의 살아 있는 빛의 차원이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 차원은 앞으로 이 책에서 많이 다루게 될 것인데, 인간이 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영역이다. 기름부음이 없으면 영적인 빛도 없지만, 하나님이 기름이 있으면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빛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조슈아 밀즈 – 빛의 전사들
하나님의 뜻이 지닌 이 두 가지 측면, 즉 그분의 말씀에 이미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청사진이라는 정적인 개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줄로 달아 내리는 요술보따리 같은 것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때로 성령에 의한 깊은 확신을 주시는데, 그것은 어떤 행동 방침에 대해 옳다는 느낌이나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느낌을 심화시킵니다. 이것은 우리를 충동질하여 오늘은 홍콩행 비행기를 타게 하고 내일은 시카고로, 그다음 날은 카누를 타고 아마존강 상류 쪽으로 노를 저어 가게 하는 등 매일 색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리는 ‘변덕이 심한’ 정서 상태와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쥐덫을 놓는 식으로 우리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분은, “하하, 너는 이 길이 옳은 길인 줄 알았지? 틀렸어. 다시 돌아가거라. 다음 기회에는 부디 운이 좋기를!”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그런 왜곡된 개념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가지고 장난을 치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분에게 매우 의미 있는 존재입니다.
폴 E. 리틀 –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