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라이언 브라운의 기고글인 ‘나이지리아의 기독교 박해: 선동이 아닌 현실에 응답하다’(Christian persecution in Nigeria: Responding to reality, not rhetoric)를 4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라이언 브라운은 오픈도어 US의 회장 겸 CEO로 섬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최근 며칠 사이, 나이지리아의 종교 자유 위기가 상반된 서사 속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한 나이지리아 정부 고문은 알자지라(Al Jazeera)와의 인터뷰에서 “나이지리아에는 기독교인에 대한 집단학살(genocide)은 없다”며, 수많은 죽음과 이주 사태를 단지 “민족적·자원 갈등”에 불과하다고 치부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나이지리아를 ‘특별우려국가(Country of Particular Concern)’로 지정했고, 기독교 박해가 계속될 경우 군사 개입까지 언급한 바 있다.
이 논의의 가장 큰 위험은, 이러한 말싸움이 우리가 도와야 할 나이지리아 기독교인들을 오히려 잊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기록된 현실은 끔찍하다. 실제 사람들이, 실제 신앙 때문에 폭력을 당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수사나 감정이 아니라, 진실에 기반한 옹호다. ‘오픈도어스(Open Doors)’의 세계 박해 지수(World Watch List)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신앙 때문에 살해된 4,476명의 기독교인 중 3,100명이 나이지리아에서 발생했다. 또한 신앙 때문에 납치된 사람 3,775명 중 2,830명이 나이지리아인이었다.
오픈도어스는 ‘집단학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법적으로 매우 명확한 정의가 필요한 단어이며, 증명되지 않은 주장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단어를 피한다고 해서 박해의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이지리아 중부와 북부 전역에서는 기독교인들을 향한 폭력이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마을 전체가 지도에서 사라지고 있다. 교회는 불타고, 목회자들은 납치되고, 가족들은 밤에 도망쳐 평생 살아온 집을 뒤로한 채 맨발로 도피한다.
공인이 “박해는 없다”고 부정하거나, 또 다른 이가 “군사 개입”을 주장할 때, 초점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서 정치적 논쟁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도 사람들이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있으며,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며, 박해는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아들을 묻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목자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이들의 증언을, 잿더미가 된 교회를 바라보는 목회자의 절규를 듣는다. 이 이야기들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공포 속에서도 신앙을 붙잡은 사람들의 실제 삶이다.
물론 ‘단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정부 관계자들이 박해를 부정하거나, 국제 사회가 무력 개입만을 논의하는 것은 희망의 끈을 놓게 만들 뿐이다. 먼저 고통받는 교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이지리아가 다시 ‘특별우려국가(CPC)’로 재지정된 것은 옳은 방향의 한 걸음이다. 오픈도어스 아프리카 사역 대변인 조 뉴하우스(Jo Newhouse)는 “이 조치는 문제가 대규모이자 심각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며, 나이지리아의 가장 취약한 이들이 겪는 고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는 군사적 개입이 아니라, 책임성과 보호를 중심으로 한 실질적 국제 압박을 가능하게 한다.
미국과 국제 사회는 외교 채널을 통해 분명하고 단호하게 행동해야 한다. 현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공정한 가해자 처벌, 폭력 억제, 공동체 회복이다.
시민들도 역할이 있다. 오픈도어스는 *‘Arise Africa 캠페인’*을 통해 유엔에 전달할 서명 운동을 진행 중이다. 이는 폭력으로부터 신앙 소수자들을 보호하고, 공정한 사법 절차를 통해 책임을 묻고, 파괴된 공동체를 회복시키자는 구체적 행동을 촉구한다. 작은 서명 하나가 모여, 박해받는 이들이 결코 잊히지 않았음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
정책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공감과 기도다. 전 세계 교회는 인식 확산, 후원, 그리고 중보기도를 통해 나이지리아의 형제자매들과 연대할 수 있다. 성경은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아파한다”고 말한다. 이 문제는 정치나 국경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문제다.
어떤 이는 여전히 용어와 정의를 두고 논쟁할 것이다. 그러나 단어의 선택이나 정치적 수사에 몰두하다, 피 흘리고 부서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묻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집단학살’, ‘민족 청소’, ‘박해’ 어느 단어로 불리든, 결과는 같다. 공동체는 무너지고, 신앙은 시험당하며, 희망은 위태로워지고 있다.
분열된 세상 속에서, 종교의 자유를 지키는 일은 우리를 다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과제다.
신앙의 자유는 정치적 사안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에 관한 일이다.
나이지리아의 기독교인들은 특권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보호받을 권리와 평화를 누릴 권리를 요청할 뿐이다. 그들의 물음은 간단하다: “세상은 아직 우리를 위해 현명하게 응답할 마음이 있는가?”
우리의 대답은 반드시 “그렇다”여야 한다. 그리고 그 “그렇다”는 말은 협박이나 부정이 아니라, 그들의 존엄을 세우고 폭력의 근원을 해결하는 지속적이고 평화적인 연대의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