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따르기로 한 결정은 인생 전체를 바꾼다. 그 선택은 우리의 사고방식, 공동체, 정치, 그리고 존재의 근본 질서까지 새롭게 만든다.” 세계적인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는 이렇게 단언한다. <타임 Time>지가 선정한 “미국 최고의 신학자”이자, 로완 윌리엄스 전 캔터베리 대주교가 “우리 시대 최고의 기독교적 지성”이라 부른 그는, 새 책 <그리스도가 만드신 차이>에서 오늘날 탈기독교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던지는 신학적 선언문을 제시한다.
이 책은 하우어워스의 방대한 저작 중 “제자도(Discipleship)”와 관련된 핵심 사상만을 엮은 결정판이다. 단순한 인용집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새롭게 다듬은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말한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신앙을 고백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생각과 사회 질서를 뒤흔드는 ‘새로운 현실’이다.”
기독교가 중심을 잃은 시대, 오히려 복음의 기회가 되다
하우어워스는 냉철하게 진단한다. 오늘날 서구 사회는 더 이상 ‘기독교적 세계’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 시대를 비극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말로 복음을 새롭게 들을 수 있는 기회의 시기”라 선언한다.
그는 “기독교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기에, 이제 우리는 진짜 복음을 자유롭게 선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교회가 더 이상 국가의 도구가 아니며, 문화적 영향력을 잃은 자리에서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본래의 빛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오늘의 교회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관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와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실천함으로써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안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세상의 권력과 경쟁에서 벗어나, 원수까지 사랑하고, 약자를 돌보며, 평화를 이루는 새로운 질서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 나라 — 새로운 세계의 시작
“예수님이 곧 하나님 나라다.” 하우어워스는 예수님을 단순히 구세주로만 보지 않는다.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현실이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십자가에서 세상의 권력은 무력화되었다. 하나님은 폭력이 아닌 고난의 수용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셨고, 이 방식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정치라고 선언한다.
그는 이렇게 쓴다: “교회의 차이는 단순히 가치관의 차이가 아니라, 예수님의 차이다.” 하우어워스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새 창조를 ‘삶으로 증언하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의 정치는 법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환대의 정치, 용서의 정치, 평화의 정치다. “원수를 인내하며 견디고, 상처 입은 자를 돌보는 것”이야말로 예수를 따르는 참된 정치라는 것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의 의미 — 사랑과 제자도의 혁명
하우어워스에게 제자도는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거나 도덕적으로 사는 문제가 아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삶으로 확증하는 것”이 진짜 제자도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이야기에 자신의 삶을 결합시키는 사람이다. 복음은 사랑의 원리를 가르치는 추상적 윤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 안에서 드러난 구체적 사랑의 이야기다.
“복음은 사랑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하우어워스는 결혼, 공동체, 용서, 비폭력 등 일상의 주제를 통해 복음이 어떻게 현실 속에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그는 결혼을 “사랑의 학교”라 부르며,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통해 사랑을 배우는 것”이라 말한다. 또한 비폭력에 대해서는 “전략이 아니라 존재 방식”으로 이해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누군가의 생명을 취할 준비가 아니라, 스스로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교회가 되는 것 — 세상을 향한 가장 창의적인 정치적 행위
하우어워스의 신학은 언제나 ‘교회’로 돌아온다. 그는 교회를 단순히 모이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증언하는 공동체로 본다.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창의적인 사회적 전략은 바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이 문장은 그가 전하는 모든 메시지의 핵심이다.
교회는 세상의 정책이나 법률로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께서 낯선 자들을 가족으로 엮으시는 새로운 사회, 서로의 다름이 연합을 이루는 사랑의 공동체 — 를 삶으로 보여 줌으로써 세상을 섬긴다. 그것이 곧 복음의 정치이며,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잃어버린 중심에서 피어나는 복음의 자유
<그리스도가 만드신 차이>는 기독교가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다시 복음을 살아내는 시대의 선언문이다. 하우어워스는 교회가 세상의 인정과 권력의 자리를 잃은 지금, 오히려 가장 복음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권력을 잃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 더는 잃을 것이 없기에 예수를 따르는 삶을 기꺼이 살 수 있다.” 그의 신학은 결코 이론적이지 않다. 현실의 고통과 사회의 긴장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예수를 따르는 삶이 어떻게 세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는지를 보여 준다.
<그리스도가 만드신 차이>는 오늘의 교회가 다시 ‘예수님으로 인해 다른 삶’을 선택할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