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도시는 거대한 경쟁과 고립의 상징이 되었다. 빌딩 숲과 네온사인, 분주한 네트워크의 이면에는 단절과 피로, 불신의 벽이 도사린다. 그러나 <무너진 곳을 다시 잇는 사람들>은 이 도시의 무너진 틈 사이에서 하나님이 여전히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가신다는 소망을 말한다. 이 책은 도시 사역에 대한 단순한 매뉴얼이 아니다. 저자는 기존 교회를 평가하거나 도시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도시 속에서 여전히 행하시는 ‘복음의 연결 작업’에 초점을 맞춘다.
그 연결의 주체는 바로 ‘다중 정체성’을 가진 도시인들, 그리고 도시 한복판에서 신앙의 다리를 놓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다.
도시, 새로운 선교의 장이 되다
저자는 “도시는 단절의 공간이 아니라, 복음의 다리가 세워지는 현장”이라고 말한다. 무한경쟁과 불신이 만들어낸 새로운 계층사회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도시인을 통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도시인들은 여러 세계관과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존재들이다. 낮에는 회사원으로, 밤에는 봉사자 혹은 예술가로, 주말에는 교회의 리더로 살아간다. 이 다중적 삶의 구조 속에 하나님이 세상을 잇는 통로를 심어두셨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다중 정체성 소유자들은 선교적 잠재력이 크다. 그들은 늘 두 사회를 오가며 다리를 놓는다. 그들의 삶 안에는 언제나 ‘연결’이라는 복음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도시형 교회의 사명: 화해와 용서의 다리 되기
<무너진 곳을 다시 잇는 사람들>은 교회가 도시 안에서 감당해야 할 새로운 성전의 역할을 모색한다. 성경적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모임’이며, 그 모임이 서 있는 모든 공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자리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도시 교회는 자신이 처한 형편 속에서 창의적으로 공간을 변화시켜야 한다. 모든 장소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게 하라. 그것이 도시형 성전이다.”
그리고 그 공간의 회복은 곧 사람과 사람의 화해로 이어져야 한다. “도시는 공간을 두고 지금도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교회는 그 갈등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화해와 용서의 다리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개인 간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구조적 불의를 다루며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그것이 예수께서 보여주신 ‘성육신적 선교’의 연장선이다.
좋은 이웃, 우아하게 불편함을 일으키는 사람
이 책이 던지는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은 “좋은 이웃은 용기 있게 남을 참견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도시에서는 무관심이 예의가 된다. 서로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거리를 유지한다. 하지만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단지 멀리서 인사만 하는 사람으로 부름 받았는가?”
로저 슈레더의 말을 인용하며 저자는 말한다: “선교란 남의 정원을 밟고 들어가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즉, 이웃이란 저절로 생기는 존재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이며, 도시 속에서 이웃 됨은 의도적이고 용기 있는 행위라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 그리고 ‘잇는 사람들’의 신학
저자는 도시를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 의미를 빚어내는 신학적 공간’으로 본다. “시간은 모양을 만들고, 공간은 형체를 드러낸다. 공간은 다시 의미를 갖게 되고, 시간은 그 의미를 성숙시킨다.” 즉, 그리스도인이 발 딛고 사는 도시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공간이자, 하나님이 여전히 새 의미를 불어넣고 계신 무대다.
도시를 단지 ‘정복해야 할 세속적 공간’으로 보는 대신, 하나님이 시간 속에서 복음의 흔적을 새겨 넣으신 ‘사명의 자리’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신학적 깊이를 더한다.
“무너진 곳을 다시 잇는 사람들”의 사명
현대의 도시는 풍요로워 보이지만 여전히 불평등의 담장 속에 갇혀 있다. 정보와 자원을 통제하는 소수의 기득권, 그리고 신분 상승을 위해 밤낮없이 뛰는 수많은 시민들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저자는 말한다: “이때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져야 할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예수님은 ‘선한 이웃’이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하는 존재라 가르치셨다. 이웃은 자비와 용기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무너진 도시를 다시 잇는 사람들은 단지 교회 지도자나 선교사가 아니라, 일터와 거리, 관계와 일상 속에서 이웃을 만들어 가는 모든 평범한 성도들이다.
도시를 위한 복음, 이웃을 위한 용기
<무너진 곳을 다시 잇는 사람들>은 도시를 위한 새로운 교회론을 제시하는 동시에, “어떻게 도시 속에서 복음을 실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도시의 다중 정체성을 품은 그리스도인, 복잡한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빚어내는 교회, 그리고 용기 있게 남의 정원을 밟고 들어가는 ‘좋은 이웃’. 이 책은 그들을 “하나님이 부르신 연결의 사람들”, 곧 “무너진 곳을 다시 잇는 사람들”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