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사만다 링-크렙스의 기고글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 우리의 민족적 고유함도 함께 가져간다’(We bring our ethnic uniqueness with us when we become new creatures in Christ)를 최근 게재했다.
사만다 링-크렙스(Samantha Ling-Krebs)는 Asian Xpression의 공동 설립자로 Z세대 아시아인들이 지상명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복음적 동원과 선교 사역을 통해 그들을 깨우고 세우는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필자는 홍콩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캐나다로 이주했다. 어린 시절 서구 문화권에서 성장한 필자는 늘 문화적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꼈다. 이른바 “바나나(겉은 노랗고 속은 희다)”라 불리는 완전한 서구화된 아시아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새로 이민 온 이들, 즉 “보트에서 막 내린 사람들”과 동일시되고 싶지도 않았다. 어딘가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두 세계 사이의 문화적 연옥에 갇혀 있었다.
두 세계 사이의 혼란과 불안
이것은 단순한 십대 시절의 불안이나 일시적 고민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내면 깊이 뿌리내린 상처였고, 필자가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한 근원이 되었다. 이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홍콩을 방문했을 때, 필자는 자신이 중국계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광둥어를 전혀 모르는 척했다. 어린 시절의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로만 대화하며, 스스로를 감추었다. 그러나 캐나다에 돌아오면 상황은 정반대였다. 서양 친구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서구적이지 않다’는 불안이 있었고, 중국계 친구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중국적이지 않다’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결국 필자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정체성의 틈새에서 방황했다.
뿌리를 부끄러워하던 어린 시절
필자에게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은 긍정적 의미보다는 불편함의 상징이었다. 중국인으로서의 삶은 늘 제약과 차이의 감각을 불러왔다. 학교에 혼자 걸어갈 수 없었고, 점심 도시락은 “냄새나는 음식”이라며 놀림을 받았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에서 귀여운 도시락으로 유행하는 3단 도시락통이 당시에는 부끄러움의 원인이었다.
또한 필자의 어머니는 “캐나다 학교는 너무 춥다”며 한겨울마다 옷을 겹겹이 입히셨다. 중앙난방이 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중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았다.’
신앙이 민족 정체성에 닿지 못했을 때
필자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도, 이러한 감정은 변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복음의 진리를 배웠지만, 그 과정에서 민족적 정체성은 복음과 무관한 영역으로 밀려났다. 심지어 선교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도 필자는 중국인을 향한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중국만은 보내지 마세요. 캄보디아든, 일본이든, 라오스든, 태국이든 어디든 좋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안 됩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은밀한 거부감에서 비롯된 회피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몰랐다. 교회에서도, 선교 훈련에서도, 아무도 이런 주제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던 필자에게, 어느 날 인생을 바꿔놓은 한 사건이 찾아왔다.
한 간증이 열어준 새로운 시선
필자는 어느 날, 중국 본토에서 박해를 받는 한 목회자의 간증을 들었다. 그는 복음 때문에 18년간 감옥에 갇혔고, 집 없이 떠돌며 평생을 도망자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박해받는 성도들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지만, 그날의 경험은 달랐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필자의 마음속 견고한 벽이 무너졌다. 처음으로 필자는 그의 이야기가 단순히 ‘믿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복음은 단지 서양 선교사들이 바다를 건너와 전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필자의 조국과 조상들이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 순간, 필자는 지금껏 외면해온 영적 유산(spiritual inheritance)을 깨달았다. 그 목회자는 필자를 전도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마치 영적 아버지처럼 느껴졌다. 그때 처음으로 필자는 “중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마치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은 듯, 수백만 달러를 얻은 듯한 벅찬 기쁨이었다.
회개와 치유의 여정
이 깨달음은 필자의 눈을 열어, 자신의 민족 안에 담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보게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사랑은 회개의 시간으로 이끌었다. 필자는 자신 안에 자리 잡았던 교만한 생각들을 직면해야 했다. “서양에서 자랐으니 내가 더 우월하다.”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무례할까?” 어릴 적부터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편견들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필자는 자신이 싫어했던 ‘중국다움’이 사실은 문화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상처와 경험의 결과였음을 깨달았다. 가족 간의 갈등, 다름에 대한 부끄러움, 교회 안에서의 문화적 오해들이 모든 것이 얽혀 있었다.
용서와 화해,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지나며 필자는 문화 속의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과 인간의 깨어짐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감추어진 보석들을 다시 발견하게 하셨다.
복음 안에서 새롭게 된 정체성
그 후로 필자는 복음 안에서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같은 여정을 걷는 이들과 만나면서, 복음이 각 문화 속에서 얼마나 다채롭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았다.
필자는 이제 이 여정이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필자는 우리 디아스포라 세대의 미래를 정의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각자의 목소리를 찾고, 새로운 표현의 길을 열어갈 때, 하나님의 마음과 창조의 다양성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뿌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필자는 중국인으로 지음 받은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정체성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안에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