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는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딤전 3:8-13)
사도 바울은 “집사들은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한다”(딤전 3:9)고 규정한다. 집사(διάκονος, diakonos)는 본래 ‘시중드는 자, 봉사자’를 의미하며, 사도행전 6장에서 헬라파 과부들의 구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워진 일곱 집사에게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고, 집사들은 교회의 구제와 봉사를 전담하였다.
디모데전서 3장은 집사의 자격을 상세히 열거한다.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절제와 정직을 지니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여야 한다. 이는 집사가 단순한 기능적 봉사자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영적 모범과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야 하는 사역자임을 의미한다.
한국교회에서는 집사와 권사를 구별하고 남자 집사 중에서 장로를 선출하고 여자 집사 중에서 권사를 선출한다. 또한 집사는 총회결의를 거치고 안수를 받았다는 의미에서 안수집사라고 부르기도 하며, 그렇지 않고 1년 단위로 선임되는 집사를 서리집사라고 하여 임시직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국가법인 민법은 교회를 비법인사단으로 보기 때문에 그 구성원의 일원인 집사(권사)는 독립된 법적 지위를 갖지 않으며, 교단 헌법이나 교회 정관에 의해 그 지위와 역할이 정해진다. 한국교회 표준정관은 집사(권사)를 “목사와 장로를 협력하여 봉사하고, 헌금을 수납하며, 구제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자”로 정의한다.
집사(권사)는 교회의 주축으로서 목사와 장로의 지도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의 공동체인 교회의 사명을 감당한다. 구체적으로는 헌금, 안내, 성찬 보조, 기도 순서에 참여함으로써 예배사역을 돕고 심방, 환자 위로, 새가족 정착 돕기 등으로 구제사역에 참여한다. 그러나 집사와 권사들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제직회의 구성원으로서 헌금 관리와 재정집행을 담당하는데 있다.
항존직인 집사와 권사는 교인총회의 선출을 거쳐 임직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투표에 의한 (안수)집사 선출은 민주적 참여를 보장하지만 때로는 파벌과 갈등을 초래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후보자를 당회가 추천하고, 교인들이 일정 기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있다.
집사와 권사는 본래 봉사직이므로 교회로부터 보수를 받지 않고 오히려 헌금으로 교회 재정을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약간의 사례비를 받는다 해도 일반적으로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 규모가 커지면서, 정규 근무시간에 고정적인 보수를 받고 행정·시설 관리에 종사하는 관리집사·사찰집사 제도가 생겨났다.
이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가 문제가 되는데 법원은, 교회와 종속적 관계에 있는지, 보수가 생활임금 수준인지, 근무시간과 장소가 지정되는지 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만일 관리집사가 5인 이상 근무하면 교회도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사업장이 된다. 실제로 관리집사 해고를 둘러싼 소송에서, 법원은 이들을 교회의 신앙적 봉사직으로 보지 않고 근로자로 인정하였다. 그렇게 되면 해고는 권징 절차가 아니라 근로계약상의 문제가 되며 교회로서는 원치 않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성경은 집사(권사)를 깨끗한 양심과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로 세우라고 가르친다. 집사는 섬김과 봉사의 모범이자,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 가는 중요한 동역자이다. 그러나 교회의 제도와 현실 속에서 집사는 두 가지 차원으로 나뉜다. 첫째는 영적 직분으로서의 집사로서 보수와 무관하게 봉사와 섬김에 헌신하는 직분이다. 다음으로는 근로자로서의 집사로서 교회 행정·시설 관리 등 상근 업무를 맡고 임금을 받는 직책이다.
이 두 영역이 혼동될 때 교회는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집사의 영적 본질을 분명히 가르치되, 근로자로 종사하는 집사에게는 법이 요구하는 근로 조건을 충실히 보장해야 한다. 결국 집사의 권위와 정당성은 투표나 법적 지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섬김, 정직, 책임 있는 봉사에서 비롯된다. 교회가 이 원칙을 지켜 갈 때, 집사 직분은 세상의 법정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 안에서 존경받는 자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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