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짐 이튼의 기고글인 ‘폭력의 시대에 화평케 하는 자를 위한 절규’(A cry for peacemakers in a time of violence)를 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짐 이튼은 피스빌더스 테이블(PeaceBuilders Table)의 설립자이자 CEO이며 컨버지 월드와이드(Converge Worldwide)의 다양성 공동 디렉터로 섬기고 있다. 그는 또한 세계복음연맹(WEA) 산하의 글로벌 네트워크인 화해와 평화 네트워크(PRN, Peace & Reconciliation Network)의 미국 공동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오늘날 미국은 폭력에 사로잡힌 채, 무엇을 느껴야 할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헤매고 있다. 찰리 커크(Charlie Kirk), 이리나 자루츠카(Iryna Zarutska), 멜리사와 마크 호트만(Melissa and Mark Hortman), 그리고 교실과 예배당에서 너무 일찍 생을 마감한 수많은 학생들의 이름이 그 비극의 증거이다.
우리의 민족적 상처는 늘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덮인 줄 알았던 딱지가 또다시 벗겨지고, 공동체는 더욱 날카롭게 분열되어 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외치셨다. “그들은 내 백성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고치려 한다. ‘평화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평화가 없다.” (예레미야 6:14, 새번역)
오늘 미국 곳곳에서 우리의 마음은 무겁다. 우리는 슬픔을, 분노를, 때로는 절망을 느낀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단지 폭력 행위만이 아니라, 공기 속에 무겁게 드리운 폭력의 영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종종 두 가지 선택만이 있다고 느낀다. 한쪽 편을 택해 손가락질하는 것이다. 우리의 편은 정의롭고, 다른 쪽은 악하다고 선언한다. 민주당을 위한 희생에는 눈물을 흘리지만 공화당을 위한 희생에는 침묵하거나, 혹은 반대로 공화당을 위하면서 민주당의 죽음은 무시한다. 하지만 생명이 단지 당파성으로만 정의되는가? 모든 인간의 생명은 본질적으로 거룩하지 않은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26-27) 성경은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지음받아 거룩한 존재임을 선포한다. 태아이든 노인이든, 인종과 문화, 국적과 이민자 신분을 막론하고, 사회적 지위나 성별, 혹은 정치적 소속을 불문하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귀하다.
미국만이 이런 분열과 폭력의 문제를 겪는 것은 아니다. 인류는 언제나 복수하고 싶어 하는 본능, 잘못을 갚아주고 싶어 하는 충동과 싸워 왔다. 그러나 북아일랜드,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팔레스타인, 르완다, 그리고 미국의 역사가 보여주듯, 폭력으로 폭력을 맞서는 방식은 결코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다음 폭력의 무대를 준비할 뿐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랑을 선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증오는 너무 무거운 짐이기 때문입니다.” 간디 역시 이렇게 말했다. “적과 맞닥뜨릴 때마다, 사랑으로 그를 이기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부르심은 분명하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마태복음 5:9)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인자(人子) 앞에 나아가 그 발 아래 앉아 배워야 한다. 우리의 궁극적 부르심은 깃발이나 정당이 아니라 영혼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우리의 상징은 칼이 아니라 십자가다.
점점 더 위험한 시대 속에서 두려움과 불신이 높아질 때, 예수를 따르는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화평케 하는 자로 살라는 단 하나의 부르심에 헌신해야 한다. 예수의 길은 ‘빨강과 파랑’, ‘좌와 우’라는 정치 구도 안에 neatly 들어맞지 않는다. 그것은 초월적이며, 복음의 평화에 뿌리를 둔 길이다. 그것은 신정정치를 향한 길이 아니라, 열린 손으로 예수의 길을 본받아 서로 다른 문화, 계층, 종교를 가진 이웃을 존중과 사랑으로 대하는 길이다.
이것은 두려운 시대이지만 동시에 기회의 순간이기도 하다. 지금은 더 작은 야망들을 버리고 예수의 나라를 향한 부르심에 다시 헌신할 때이다. 지금은 세계 교회가 고난 속에서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배워야 할 때이다. 지금은 정치가 아닌 예수의 나라에 뿌리내린 희망을 세상에 보여야 할 때이다. 그 희망은 치유와 화해, 그리고 평화를 불러오며,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끝까지 서로를 사랑하라는 부르심이다.